[횡설수설/주성원]광주의 ‘일자리 실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광주광역시에는 상추튀김이라는 독특한 간식거리가 있다. 이름만 들으면 상추를 튀긴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은 오징어튀김을 간장에 절인 고추에 곁들여 싸먹는 상추쌈이다. 상추가 느끼함을 잡아주고 튀김의 고소한 맛을 살린다. 상추쌈은 고기에, 튀김은 간장에만 어울린다는 선입견을 깬 덕에 광주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광주시가 추진하는 ‘반값 연봉 자동차 공장’도 상추튀김과 비슷한 면이 있다. 임금이 많지 않고 대기업이 아니라면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없다는 기존의 틀을 깨려는 시도다.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의 연봉은 4000만 원으로 완성차 근로자 평균임금의 절반에 못 미친다. 하지만 광주시가 주택과 의료, 교육을 지원해 실질 가처분소득을 높이기로 했다. 1만2000개 새 일자리가 지역경제에 기여할 것을 고려하면 시로서도 해볼 만한 투자다.

▷광주의 고용률은 59.7%로 전국 평균 61.3%를 밑돈다. 지역 내 1인당 총생산도 세종시를 제외한 16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5위일 만큼 ‘괜찮은 일자리’도 적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4년 전 광주시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시(市)를 모델로 일자리 창출 구상을 밝혔다. 1999년 볼프스부르크는 폴크스바겐과 합작해 공장을 세우고 기존 폴크스바겐보다 임금은 20% 적고 근로시간은 주당 3시간 많은 조건으로 실업자를 고용했다. 18%까지 치솟은 지역 실업률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타협이었지만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폴크스바겐의 실적도 올라갔다.

▷지난달 현대자동차가 투자의향서를 제출해 공장 설립이 가시화하는 듯했지만 현대차 노조가 “반값 연봉은 전체 근로자의 임금을 낮출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결국 노조의 ‘제 밥그릇 걱정’이라는 것이 자동차업계의 이야기다. 낮은 임금으로 비슷한 제품을 생산하게 되면 부담을 느끼는 쪽은 노조다. 현대차 노조는 이 문제를 임·단협과 연계하겠다고까지 밝혔다. 19일 예정이던 투자협약서 체결은 연기됐다. 광주의 ‘일자리 실험’은 이대로 멈출 것인가.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
#광주광역시#일자리 실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