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엄마, 무신정변의 전개… 전개가 뭐야? 소수림왕 내물왕, 이건 왕 이름이지?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강감…찬? 침입이 뭐야? 돌덧…널무덤이 뭐야? 왕족 계루부 고씨…고주몽은 또 뭐야? 신라와 수의 연합, 연합이 뭐야?”
13세, 평생 프랑스 학교에서 공부했던 아이가 한국 중학교에 들어갔다. 집에 돌아오면 연필심을 꼭꼭 깨물면서 ‘뭐야 뭐야’ 질문을 퍼부었다. 뒤죽박죽 실타래 속을 허우적대는 표정이었다. 아들의 한국어 실력은 초등 2학년에도 못 미치는 정도였다. 한 집안의 가장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 가족 모두의 대모험이 시작된다. 특히 아들은 언어가 바뀌고 교과서가 바뀌는 대혼란,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무신정변이란 건 말이다… 음… 소수림이나 내물왕은 왕은 왕인데 말이다… 강감찬은 위대한 장군이지. 그런데… 계루부? 이건 또 뭐야? 가만 있어봐 엄마가 찾아줄게. 여기 다 나온단다. 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인터넷을 마구마구 뒤지고 그것을 프린트 하면서 내 머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위대한 엄마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나는 매번 낑낑거리다 부르르 화를 내는 것으로 끝을 냈다. 이 나이에 주경야독이라니. 노안으로 눈도 잘 안 보이는데…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그런데 엄마. 한국 학교는 왜 머리카락을 간섭해? 머리랑 공부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교복은 왜 입어야 해? 난 이 교복 저고리 느낌이 너무 싫어. 불편해. 왜 2학년 애들한테 안녕하세요, 고개 숙여 인사해야 해? 나보다 키도 더 작은데… 학교 점심 메뉴는 왜 매일 밥 국, 밥 국이야? 제일 이상한 건 교무실 청소를 왜 우리가 해야 하는 거지? 선생님이 우리 교실을 청소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교무실은 따뜻하고 우리 교실은 너무 추워. 선생님이 왜 우리보다 더 좋은 교실을 가지는 거야?”
‘뭐야 뭐야?’가 지나가면 ‘왜 왜?’가 시작되었다.
“음, 그건 말이다… 머리가 길면 잡생각이 많이 난단다… 삼손도 머리카락을 잘라버리면 힘을 잃어버리잖아. 그러니까 너희들도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말고 공부에나 집중하라는 뜻이 있겠지… 교복이 없으면 너희들이 학교가 패션쇼장인 줄 알까 봐 걱정해서 그런 거란다. 2학년한테 고개 숙여 인사하는 건 말이다… 한국에서는 윗사람을 공경해야 한다는 장유유서… 그리고 한국 사람은 매일 밥이랑 국, 이거 안 먹으면 쓰러진다. 그리고 제일 나쁜 건 선생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버릇이다. 하여간에 넌 질문이 너무 많아. 그게 문제야….”
나의 중얼중얼 영혼 없는 대답에 레돔은 콧방귀와 함께 웃어댔다. 늘 그렇듯이 나의 걱정은 깊고 조용한 밤, 이불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라 왔다. 아들을 한국에 데리고 온 것은 잘못된 결정 아닐까? 한국말도 프랑스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정쩡한 바보가 되는 건 아닐까? 여기서도 외톨이 저기서도 외톨이,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아이가 되는 건 아닐까? 한국 애도 프랑스 애도 아닌, 정체성 불명의 아이가 되는 건 아닐까…. 아닐까 걱정이 끝없이 이어졌다.
“소똥을 구해야 해. 유기농 풀을 먹은 소가 눈 신선한 소똥.”
어미는 아들이 살아갈 멀고 먼 인생길을 걱정하느라 잠을 설치는데 아비는 소똥 생각만 하고 있었다. 사과농장을 가지게 된 그 순간부터 레돔은 소똥 노래를 불렀다. 소똥도 신선한 게 있나? 저 건너 농장의 소들이 소똥 잔뜩 싸놓았던데…. 그건 싫다 하고 신선한 소똥 타령만 했다. 나는 끙 소리를 냈다. 차라리 내가 소라면 좋으련만. 일단 오늘은 잠 좀 자고 신선한 소똥에 대해서는 내일 생각해 보자꾸나.
신이현 작가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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