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똥내음’이라는 말을 보자. 이 말은 잘못된 표현일까? 사전 속에 ‘내음’은 ‘코로 맡을 수 있는 나쁘지 않거나 향기로운 기운’으로 되어 있다. 이 의미에 따라 ‘소똥내음’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시는 그냥 느끼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아래와 같은 시에서는 가득한 향기를 오롯이 맡는 것이 시를 제대로 느끼는 것이리라.
새로 피는 꽃내음과 아기 비내음과 나무내음과 바람내음이 살을 섞은 이 봄 공기는 무한히 충만해 있으면서 비어 있는 유마힐의 공기. 해마다 네게 드리고픈 선물은 오직 이것뿐. ―나태주, 새로 피는 꽃내음(1979년 작)
문제는 국어학 전공자로서 가끔 시심을 깨뜨리는 말도 하게 된다는 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내음’은 맞춤법에 어긋나는 단어였다. 그러니 1979년에 나온 이 시의 ‘내음’은 모두 비표준어다. 당시 표준어는 ‘냄새’다. 그러면 이 시의 ‘내음’을 모두 ‘냄새’로 바꾸어야 할까? 이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시심은 다 깨지고야 만다.
괜히 ‘내음’을 모두 ‘냄새’로 바꾸어야 하는가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 언어들은 심미적 영역으로 ‘시적 허용’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니까. 엄밀하게 표준어적인 접근을 한다 할지라도 현재의 우리는 모든 ‘내음’을 ‘냄새’로 바꾸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아도 된다. ‘내음’ 역시 지금은 표준어로 인정되었으니까.
그렇다면 ‘내음’이 표준어로 인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쓰는 말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내음’의 인터넷 검색 결과를 참조해 보자. 정말 많은 ‘내음’이 나온다. 우리가 이 말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다. 몇 개만 소개해 보자.
강내음, 가늘한 내음, 가을내음, 들내음, 봄내음, 사람내음, 산내음, 풀내음, 흙내음
주로 동아리 활동 이름이나 블로그 이름들이다. 여기의 ‘내음’을 ‘냄새’로 바꾸어 보자. 이전 느낌이 그대로 살아남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름 안에도 ‘내음’이라는 단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내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확인해 보자.
① 어디서 부패한 내음(×)이 난다. ② 어디서 부패한 냄새(○)가 난다.
①은 어색하지만 ②는 그렇지 않다. ‘내음’과 ‘냄새’가 구분되는 의미역을 가진다는 의미다. ‘냄새’에는 대상이 되는 냄새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내음’은 좀 다르다. ①이 이상한 것은 ‘내음’ 자체가 가진 긍정적 어감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 사용법이 이런 구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소똥내음’을 보자. ‘소똥’ 자체가 부정적이라고 하여 이를 ‘냄새’로 수정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이 말을 쓰는 사람이 추억의 대상으로서의 긍정적 대상이라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허용 가능한 표현이다. 우리가 일상 언어에서 이런 방식의 문학적 표현을 쓴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가 딱딱한 맞춤법의 세계에 갇힌 이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달래 주는 것이 시의 언어이자 시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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