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의 뫔길]6월의 크리스마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1일 03시 00분


17일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행사에서 만난 김영숙 수녀(왼쪽)와 1950년 흥남철수작전에 참가했던 로버트 러니 예비역 해군 제독. 새에덴교회 제공
17일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행사에서 만난 김영숙 수녀(왼쪽)와 1950년 흥남철수작전에 참가했던 로버트 러니 예비역 해군 제독. 새에덴교회 제공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17일 경기 용인시 죽전의 새에덴교회에서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1950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흥남철수작전을 수행한 메러디스빅토리호의 1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러니 예비역 해군 제독(91)과 이 배에 몸을 실었을 당시 14세 소녀였던 김영숙 수녀(82)가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68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을 떠올리며 마주 잡은 손을 한동안 놓지 못했다. 흥남철수작전은 피란민 10만여 명의 목숨을 구해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린다.

이 교회가 주최한 해외 참전용사 보은행사에는 흥남철수작전과 장진호전투 참전 용사와 가족 45명이 초청됐다. 소강석 담임목사가 참전용사들에게 “당신들은 영원한 우리의 영웅”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하자 러니 제독은 “진짜 영웅은 내가 아니라 그때 흥남에 있었던 한국인들”이라며 “자유를 찾아 메러디스빅토리호에 오른 그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이 교회가 2007년 해외 참전용사 초청 행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왜 이런 행사를 한 교회에서 하나?”라는 궁금증은 물론이고 너무 나서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조차 있었다.

맨손과 맨몸, 맨땅에서 일어선 이른바 ‘3M 목회자’를 자처하는 소 목사와 참전용사 행사에 대해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200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참전용사를 만난 것이 계기였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갈 수 없다는 게 참전용사의 말이었다.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 푸른 눈, 백발의 참전용사에게 소 목사는 대꾸를 못 한 채 한국식 큰절을 했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의미였다. 그 자리에서 정부가 어려우면 교회 차원에서라도 참전용사를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12년째 어김없이 지켜졌고, 그동안 국내외 참전용사 3500여 명이 초청됐다. 국가보훈처를 빼면 가장 많은 수의 참전용사를 초청했다는 게 교회 측 설명이다.

올해 6월은 이전과 달리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12일 북-미 정상회담으로 평화와 희망을 잉태했다. 과거에는 6·25전쟁으로 상징되는 동족 상잔의 기억과 현재형의 갈등과 상처가 가득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용사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미국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KWVA)’는 지난달 초 토머스 스티븐스 회장 명의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 회원들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는 종전선언과 더불어 평화협정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을 요구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끝없는 대립과 긴장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피로 지킨 한국의 평화와 번영이 남측뿐 아니라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종교계에서도 남과 북,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행사와 종교 교류를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다. 1993년 민간에서는 최초로 설립된 대북 지원단체인 남북나눔의 행보는 눈여겨볼 만하다. 개신교계의 진보와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드물게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 단체는 다른 분야의 지원 활동도 했지만 북한 어린이 돕기에 주력해왔다. 북한 어린이를 돕는 것이 무엇보다 현실적인 통일운동이라는 게 오랫동안 이 단체를 이끌어온 홍정길 전 이사장의 신념이었다. 통일의 그날, 남과 북의 건강한 후손들이 만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취지다.

얼마 전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만난 독일 베르너 크레첼 목사는 타산지석의 지혜를 전했다. 그는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을 지켜본 산증인의 한 사람이다. 철책을 심각하게 지켜보던 그가 던진 키워드는 미래에 대한 준비와 비폭력의 기적이다. 그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의 삶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카스너 목사는 메르켈이 생후 3개월이던 때 동독에도 신앙이 필요하다며 이주했다. 자유로운 서독을 떠나 동독을 선택한 수백 명의 목회자 중 한 명이다. 신앙의 영역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크레첼 목사의 조언이다.

더 이상 남과 북으로 갈라선 반쪽의 6월이 아니길 바란다. 평화의 한반도라는 새로운 기적을 낳는 6월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참전용사#흥남철수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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