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서혜림]썩는 비닐, 농부도 좋고 환경도 좋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2일 03시 00분


서혜림 청년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 운영
서혜림 청년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 운영
시골에 살다 보면 가끔 메케한 냄새로 숨을 쉬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곳 어르신들은 아직도 가끔 쓰레기를 태우곤 한다. 도시에만 살던 나에게는 아주 충격적인 풍경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일까? 시골은 인구밀도가 워낙 낮다 보니 쓰레기 수거차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 쓰레기 배출 장소도 주로 집에서 멀다 보니 기동성이 있는 젊은이들은 차에 재활용품이나 쓰레기봉투를 싣고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기동성이 떨어지는 노인들의 경우 쓰레기봉투 비용이 아깝기도 하고, 배출하는 곳이 멀기도 하니 종종 쓰레기를 태우는 일이 생긴다. 쓰레기의 내용물을 살펴보면 대부분 비닐 포장재들이라 타면서 메케한 냄새가 난다. 도시의 비닐대란과는 다른 문제가 있다.

그저 시골 노인들은 뭘 몰라서 그렇다고 타박을 하기는 이르다. 나도 막상 시골에 살아 보니 도시보다 쓰레기차가 훨씬 적게 다니고, 집에서 배출 장소까지 꽤나 멀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골 어르신들은 쓰레기봉투를 사서 써야 한다는 걸 여전히 매우 이상한 일로 여기는 듯하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마당도 넓으니 두어 걸음 앞 공터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것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인 것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가끔씩 밭 근처에 출처를 알 수 없는 길고 검은 비닐이 나무에 걸려 휘날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바로 밭에서 사용하고 남은 멀칭비닐이다. 멀칭비닐은 잡초를 방지하고 농작물의 싹이 쉽게 나올 수 있도록 덮어주는 농업용 비닐이다.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어 본 사람이라면 밭에서 멀칭비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년 새롭게 깔아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확을 마치고 나면 그만큼의 폐기물이 생산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잘 걷어서 분리 배출을 하지만 밭 한쪽에 잘 둔다는 것이 바람에 날려 나무에서 휘날리기도 하는 것이다.

생활폐기물로 나오는 비닐도, 밭에서 사용하는 비닐도 모두 썩는 비닐을 사용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10여 년 전부터 개발을 진행해 왔던 썩는 비닐은 인열강도 등이 약한 단점이 있었지만 이제는 많이 보완하여 일반 비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만약 멀칭비닐을 걷어내지 않아도 된다면 농부의 고생도 많이 덜 수 있을 것이다. 수확을 마치고 다음번 농사를 위해 밭을 갈 때 멀칭비닐도 함께 갈아서 사용할 수 있다면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거의 언제나 장을 볼 때는 에코백을 사용하고, 플라스틱 용기를 차에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장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져 나오는 비닐 쓰레기를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환경에는 부담이 덜 되는 비닐이었으면 좋겠다. 또한 쓰레기는 태우면 안 되지만 혹시 모르고 태우는 어르신이 있더라도 유독가스를 마시지 않을 수 있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서혜림 청년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 운영
#비닐#생활폐기물#에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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