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균형’이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만, 순리 같은 가치와도 잘 연결됩니다. 세상은 물 흐르듯이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게 배워 왔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불균형’은 피해야 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과하다’는 말도 ‘충분하다’에 비해 세상에서 푸대접을 받습니다. 무엇이든지 과한 것은 좋지 않다고 배웠고 앞으로도 과하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정말 그래야만 할까요?
며칠 전에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 중인 대한민국 대표팀과 스웨덴의 첫 경기 모습을 허탈감과 졸음을 참으며 지켜보았습니다. 체격 좋은 스웨덴 선수들의 공격에 철저한 수비로 힘의 균형을 이루다가 한 방의 역습을 노려 득점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비전문가인 제게도 보였습니다. 90분 내내 양 팀 선수들이 거의 모두 우리 쪽으로 내려와 있으니 마치 축구장이 반으로 줄어든 느낌이었습니다. 서울발 부산행 열차를 탄 스웨덴팀이 대전까지는 무임승차한 것 같이 보이는, 공격과 수비의 형세였습니다.
우리 팀이 자랑하는 능력 있는 공격수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수비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수비수 확충으로 공격과 힘의 균형을 맞추면서 수비가 과도해졌습니다. 축구 경기의 목표, 상대의 골문에 공을 차 넣는 궁극적 행위는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무승부가 목표였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제 마음의 균형도 깨졌습니다. 축구에 관심이 남달라 힘껏 응원을 보냈던 많은 국민이 속이 상하셨을 겁니다. 일부는 과도하게 감독과 선수들을 비난합니다. 걱정입니다. 아직 16강 진출에 결정적인 두 경기가 남아 있는 우리 선수들이 마음의 균형을 잃고 싸워 이기겠다는 생각을 쉽게 포기할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탈락 가능성이 100%라고 판단해서 과도하게 공격에 치우친, 화끈한 전술을 채택할 수도 있겠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우리 대표팀에 대한 일부 국민의 과도한 비난이 과연 축구 자체의 문제일까요? 사람들은 가끔 운동경기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경기 결과와 자신의 인생을 겹쳐서 봅니다. 이기면 자신의 인생도 성공, 지면 실패로 느낍니다. 실패한 인생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묻는 일은 뼈아픈 고통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려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비난의 화살이 과도하게 감독과 선수들에게 향합니다.
운동경기는 즐기면 되고 대한민국이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일도 아닙니다. 이웃 나라 일본이 남미의 강호와 치른 첫 경기에서 보기 좋게 승리했다고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직 일본과는 비교해서 배우고 경쟁해야 할 훨씬 더 중요한 일들이 다른 분야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스포츠 경기는 개인의 마음이 투사되는 거대한 스크린입니다. 거리응원의 함성은 집단이 모여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가의 정체성을 경기에 투사한 결과입니다. 경기에 몰입했다는 말은 각자의 마음이 정신적 에너지를 그만큼 소비했다는 뜻이니, 다른 곳에 쓸 에너지가 거기로 갔다는 말입니다.
아쉽게도 월드컵은 곧 끝납니다. 우리의 일상은 월드컵과 무관하게 지속됩니다. 월드컵이 끝나면 일종의 금단증상을 겪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인생의 목표가 없어진 듯 느끼고 행동합니다.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경기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적절히,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기면 좋고, 지면 평정심을 되찾으면 됩니다. 텔레비전 앞에 가족이 모여 같이 응원하면서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시키는 계기로 삼아도 좋습니다.
처음 던졌던 질문들로 돌아갑니다. 균형은 늘 꾸준히 추구해야 할 덕목이고 과도함은 항상 경계해야 할 대상일까요? 일단 거창하고 과도한 규모로 이야기를 풀어 봅시다. 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존의 균형을 지키려고만 한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융합과 연결이 핵심이라면 결국 수익을 얻었던 균형을 깨고 불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때로는 과도하게 보이는 투자를 통해 예측 불가한 미래에 대비할 수도 있겠습니다.
개인에게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공하려면 위의 전략들이 고려 대상이 됩니다. 직업 선택에서도 기존의 가치인 균형과 안정성에 치우친다면 아마 공무원, 교사, 의사, 변호사 등이 후보이겠습니다. 분명한 현실은 이미 안정성 때문에 다수가 선택했던 일부 직종에서 타 직종과 대비하면 경쟁력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의사, 변호사의 경우이겠지요. 교사의 경우도 이미 사회적 존경의 대상보다는 직업의 일종이라는 쪽으로, 공무원의 경우도 퇴직 후 연금 등 안정성은 아직 있으나 4차 산업혁명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직업으로 분류될 겁니다.
균형과 충분함이라는 가치를 과도하게 중요시하면 창조적인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고 성취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불균형과 과도함만을 추구하다가는 물론 실패를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균형과 불균형, 충분함과 과도함 사이의 균형을 조절하는 일이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절대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이미 등장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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