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사키에 가면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 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 실태를 조사하고 재일 한국인의 인권을 위해 헌신한 오카 마사하루 목사를 기리기 위해 1995년 시민들이 세운 박물관이다. 그는 1974년 나가사키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에서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사망자들의 유골과 명부를 발견했다. 명부엔 한국인 이름이 즐비했다. 그때 그의 삶이 바뀌었다.
▷1988년 소설가 한수산은 일본 도쿄의 한 서점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만났다. 오카 마사하루가 쓴 책이었다. 하시마 탄광, 한국인 강제징용, 나가사키 피폭…. 한수산에겐 충격이었다. 그는 1990년부터 취재를 시작했다. 군함도와 나가사키를 수십 차례 찾았고 수많은 피해자를 만났다. 일본 전역을 훑었고 원폭 실험을 했던 미국 네바다까지 방문했다. 소설 ‘군함도’는 2016년 그렇게 태어났다. 한수산은 “소설 쓰는 내내 부끄러울 뿐이었다”고 고백했다.
▷군함도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당시 침략유산이라는 비판이 일자 일본은 한국인 등의 강제노역을 인정했다. 또 이 같은 사실을 명기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립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일본은 지키지 않았다. 탄광에 안내판을 새로 설치했지만 ‘강제동원’이란 표현은 빠졌다. 지난해 11월 유네스코에 제출한 후속조치 경과보고서를 보면, ‘강제’ 대신 ‘지원’이라는 표현을 넣었고 정보센터는 나가사키가 아니라 멀리 떨어진 도쿄에 그것도 싱크탱크 형태로 설치하겠다고 돼 있다.
▷7월 4일까지 바레인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다. 유네스코는 일본의 경과보고서를 평가하는 결정문을 채택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25일 “강제노역 사실이 결정문에 각주 형태로 명기될 것이고 일본에 후속조치 이행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의 설명은 옹색하게 들린다. 3년이 지나도 안내판 하나 제대로 세우지 않는 일본이다. 2019년 말까지 추가보고서를 낸다지만 일본의 꼼수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