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오후 예정됐던 2차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회의를 불과 3시간을 앞두고 전격 취소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동연 경제부총리,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등 당정청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회의였다. 취소 이유는 1월 1차 회의 이후 5개월이나 지났는데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고 사전보고 내용도 알맹이 없이 재탕·삼탕 식으로 나열한 것이어서 문 대통령과 이 총리가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무조정실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보강이 필요하다고 총리가 대통령에게 회의 취소를 건의했고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내용 부실로 취소된 것은 현 정부 출범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를 건의한 총리나 받아들인 대통령의 분노를 짐작하게 한다.
지난 1차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규제혁신이 있어야 혁신성장이 가능하다”면서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규제샌드박스 도입도 서둘러 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이번 2차 회의에서 논의될 주요 과제가 드론 산업, 신재생에너지 산업, 인터넷전문은행 등 핀테크 산업 등의 규제개혁이었다. 이미 1차 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속도를 내 혁파해야 할 주요 과제로 거론했던 것들이다. 업계에서 수없이 건의했고 언론에서도 늘 지적한 규제개혁 안건들이다.
그런데도 김 부총리는 1차 회의 뒤 5개월이 다 된 이달 중순에야 재계에 규제개혁 과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죽했으면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내가 회장으로 있는 4년 반 동안 정부에 제출한 것만 38번인데 상당수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토로했을까.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혁신성장회의 이후 세 번이나 “성과가 없다” “속도가 느리다”고 공개적으로 질책한 바 있다. 어제도 이 총리 보고를 받고 “답답하다”고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그렇게 답답할 정도면 현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이나 벤처들은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갔겠는가.
문 대통령은 전날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한 경제수석, 일자리수석을 교체하는 등 청와대 경제팀에 대해 사실상 문책 인사를 실시했다. 이번 2차 회의 취소는 ‘공무원 한 명에 규제 하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규제를 꿀단지처럼 끌어안고 사는 관료사회와 그런 관료사회를 일신해 혁신성장을 주도하라는 임무를 맡긴 김동연 부총리에 대한 엄중 경고의 성격을 띤다.
지금 한국 경제는 안팎으로 엄중한 상황임에도 경제정책의 한 축인 소득주도성장은 소득과 소비를 끌어올려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와는 달리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그럴수록 다른 한 축인 혁신성장이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 김 부총리를 주축으로 한 2기 경제팀은 바짝 분발해 다음에 열릴 회의에는 규제혁신에 대한 가시적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못 한다면 그때는 회의 취소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