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올 1월 개헌안 초안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자유’가 빠지더니, 교육부는 중고교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우리의 국체(國體)를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로 기술하도록 22일 확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그토록 삭제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걸고 달려온 한국 현대사와 그 현대사를 이끌어온 주류 세력에 대해 갖고 있는 알레르기적인 거부감 때문이라고 필자는 본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체(政體) 그 자체 보다는, 친(親)기업·친미·시장·경쟁…등등 자유민주주의라는 그릇 속에 담긴 채 중시돼 온 가치들에 대한 거부감인 것이다. 그런 거부감의 뿌리는 어디일까.
사법시험 출신으로 정치에 뛰어든 한 진보성향 인사가 최근에 감동받은 책이라며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지인에게 선물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1979년 출간된 이 책은 리영희 교수의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등과 더불어 1980년대 대학가의 필독서로 불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리영희 교수의 책들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됐다고 극찬한 바 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대학 신입생들은 3, 4월 사회과학 서클 세미나에서 이런 책들을 읽으며 초중고교에서 주입된 ‘반공교육’과 정반대의 시각에서 한국 현대사와 냉전시대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 후 2,3,4학년으로 올라가며 더 많은 사회과학 서적과 강의를 거치면서, 첫 학기에 개안(開眼)의 기쁨을 안겨줬던 그 책들 역시 반쪽만의 진실을 말해주는 또다른 ‘외눈박이 교과서’였음을 차츰 깨닫게 된다.
정(正)에서 반(反)으로 갔다가 중간의 균형을 찾아가는 정반합(正反合) 같은 그 과정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해방전후사의인식과 우상과이성 차원에서 사회과학 독서를 멈춘 이가 있다면, 그의 머릿속에서 현대사는 어떻게 자리잡을까.
그런 수준, 즉 대학 첫 학기 수준만큼만 의식화된 진보진영 인사들을 가끔 보게 된다. 대다수 학생들이 민주화투쟁을 할 때는 사법시험 등 안정적인 전문자격증 준비에 묻혀 지내다 그 목표를 이룬 뒤 뒤늦게 속성으로 사회과학 책 몇 권을 통해 진보적 세계관을 갖게 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문재인 정부의 인재풀 속에도 그런 이들이 적잖게 있을 것이다.
역사와 세상을 보는 시각은 각자의 자유니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타인의 삶과 사회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자신의 끌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야 하며, 만약 그 방향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면 이를 수정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한다.
수천만 희생자를 낸 광기(狂氣)의 역사인 모택동의 문화혁명과 홍위병을 칭송했던 리영희 교수가 책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우상을 파괴하려다 또 다른 우상을 만들었다며 사과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다. 중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빚어진 오류라고 한게 다다. 소련 붕괴후 쏟아진 기밀문서들이 한국전쟁의 진실을 재확인시켜줬지만 해전사의 필자들은 침묵했다. 오히려 남침유도설의 선구자 격이었던 미국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2006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의기원’을 낸 후에 비밀 해제된 문건들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스탈린이 훨씬 더 깊이 개입해 있었다”며 자신의 오류를 시인했다.
물론 헌법이나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 표현 삭제를 추진해 온 문재인 정권 인사들 가운데 사회주의를 이상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1990년대 초 동구권 몰락 이전까지는 사회주의를 꿈꿨을지라도, 속으로 ‘판단 미스’를 자인하고 대안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모델을 원하는 것인지, 현존하는 국가 가운데 예로 든다면 어떤 나라인지…, 분명하게 설명하고 선거에서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 같은 태도는 “대안은 잘 모르겠지만 자유민주주의만은 아니다”는 무책임한 비토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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