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에서 이른바 ‘멘붕(정신 붕괴)’ 상태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꼽으라면 중학교 3학년 학생과 학부모일 것이다. 이들이 치러야 할 2022학년 대학입학제도는 아직도 미궁 속에 있다. 공론화위원회가 대입제도 개편 시나리오 4가지를 공개했지만 어떤 결론이 날지 오리무중이다.
교육 현장도 동반 멘붕이다. 중3 담임을 맡고 있는 현직 교사 A 씨는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입시제도 때문에 교사들이 장기적인 교육 철학을 고민하기보다 입시에 유리한 방식을 분석해 단기적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해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3 자녀를 뒀다는 공기업 고위 임원 B 씨는 “공공기관들도 비슷한 심정”이라고 했다. 공공기관을 평가하는 기준이 최근 2, 3년 사이 큰 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B 씨는 “장기 경영 전략을 짜는 것보다 매년 바뀌는 경영 평가 기준에 맞춰 성과를 내는 게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당장 경영 평가에서 D등급(미흡) 이하 점수를 받으면 공공기관들은 기관장 경고나 해임, 성과급 미지급과 같은 불이익을 받는다.
공공기관 평가 기준은 정권에 따라 춤을 췄다. 이명박 정부 때는 고졸 채용 규모가 평가 기준이었다. 2016년 정부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독려하기 위해 이를 평가 기준으로 제시하고 인센티브와 벌칙을 강화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뒤 공개된 평가 결과에는 성과연봉제는 평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2017년에는 일자리 창출과 채용비리 근절과 같은 ‘사회적 가치’가 주요 평가 항목이 됐다. 2018년 공공기관 경영평가도 윤리적 경영, 지역 발전 기여와 같은 항목이 추가되는 등 전면 개편이 예고돼 있다.
매년 바뀌는 평가 기준 탓에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관심은 온통 눈앞의 평가에 쏠려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일자리를 늘리라는 정부의 요구에 최근 신입 사원 채용을 대폭 늘리면서 5년 차 이하 사원급 직원 비율이 20%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신입사원이 지나치게 많은 기형적 인력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에 한전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10년, 20년 뒤 인건비 부담 증가와 특정 연차 집중 문제 해소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지만 경영평가 때문에 누구도 문제 삼지 못하는 분위기다.
공공기관 평가 체계의 보완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정권에 따라 큰 폭으로 평가 기준을 흔들면서 공공기관의 정상적인 운영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 평가 기준은 재무상태 개선이나 호봉제 폐지처럼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경영 기반 조성 등 기본적 요소들에 집중돼야 한다.
정부가 평가 기준에 너무 자주 손을 대면 공공기관들은 단기 성과에 치중하고 장기 계획에는 소홀해져 방만 경영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는 모두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임을 당국은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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