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고객들을 속이고 이자를 더 받아 챙긴 대출금리 조작은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례다. 은행들은 연봉이 8300만 원인 직장인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대출서류에 소득을 0원이라고 적어 금리를 높여 받기도 했고 담보를 잡히고 대출받은 고객에게 담보가 없다고 서류를 조작해 높은 금리를 적용하기도 했다. 이런 은행들을 믿고 금융 거래를 했다니, 금융 소비자들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그런데 은행의 대출금리 조작 사건이 불거진 뒤 이를 다루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태도를 보면 더욱 황당하다.
금융감독원은 21일 KB국민, 신한, KEB하나, 우리, NH농협, IBK기업 등 9개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출금리 산정 체계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자 브리핑에 나선 금감원 당국자는 “수천 건의 금리 조작이 있었다”면서도 정작 금리를 조작한 은행들이 어디인지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기자들이 부당하게 이자를 낸 소비자들에게 알 권리가 있지 않느냐며 수차례 실명을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규정상 밝힐 수 없다”는 모호한 이유를 앞세워 끝까지 거부했다. 게다가 금감원은 “극히 일부 사례이며 대부분 은행 영업점은 제대로 금리를 산정하고 있다”며 은행들을 변호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은행 차원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개별 창구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기관 차원의 제재를 검토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해 안이한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당연히 금융위와 금감원이 소비자를 위해 존재하는지, 금융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제야 금융위·금감원은 소비자들에게 부당 이득을 돌려주라고 종용했고 26일 BNK경남, KEB하나, 한국씨티은행 등 3곳이 대출금리를 잘못 산정했다며 총 26억6900만 원을 환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경남은행은 1만2000건의 가계대출 금리를 부풀려 받았고 165개 중 100여 개 점포에서 같은 문제가 발견됐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한결같이 “직원들의 단순한 실수”라는 해명을 늘어놓는 데 급급했다. 어떻게 이자를 올려 받는 실수만 저지르고 깎아주는 실수는 하지 않는단 말인가.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위·금감원은 ‘규정’ 탓을 하며 금리 조작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나설 계획이 없으며 은행들을 처벌할 수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 은행들의 금리 조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외환은행은 2007∼2012년 전산 조작으로 고객 4800여 명의 대출금리를 올려 303억 원을 더 받은 것으로 드러나 기관경고를 받은 바 있다. 서울의 한 단위 농협 조합장은 2007년 11월부터 2014년 6월까지 2400여 명의 대출자들에게 적용하는 금리를 일방적으로 올려 22억여 원의 부당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그런데도 금융위·금감원은 재발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은행들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대출금리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고객들을 속여 금리를 조작하고 이자를 부당하게 물리는 것은 분명 범죄 행위다. 그리고 이런 행위를 지금처럼 계속 방치한다면 금융위·금감원도 공범 취급을 받을 수 있다. 금융소비자단체가 정부를 못 믿겠다며 은행들을 상대로 소비자 공동소송을 진행키로 한 것을 금융당국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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