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나비와 앙상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첨단 과학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날씨 예보의 정확도는 기껏해야 일주일을 넘지 못한다. 그럼에도 2003년 미국기상학회는 “수치예보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과학적 성과 중의 하나”라고 발표했다.

날씨 예측을 수학과 물리학에 기초한 진정한 과학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20세기 들어 빌헬름 비에르크네스 이후 치열하게 이어져 왔고, 이러한 노력은 일반순환모델(GCM)이라는 가장 복잡한 수학적 모형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GCM은 지구의 대기를 수많은 구간(Cell)으로 세분하여 각 구간에 적용되는 복잡한 방정식에 초깃값과 경계조건을 부여한 뒤 해(解)를 얻음으로써 날씨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GCM에 현재의 기상값을 입력한다면 미래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수치예보이다.

과학적 쾌거를 향해 달려가던 수치예보는 한 마리의 ‘나비’ 때문에 큰 혼란과 충격에 빠지게 된다. 1961년 에드워드 로렌즈는 기상모델의 시뮬레이션 계산을 위해 소수점 3자리까지 동일한 두 수치를 컴퓨터에 입력하였지만 그 결과는 맑은 날씨와 태풍만큼이나 커다란 격차를 보였다.

초기 조건의 미묘한 차이가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보인 것인데 로렌즈는 이를 1972년 한 학회에서 ‘브라질에 있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우리에게 ‘나비효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카오스 이론의 등장이다. 로렌즈는 카오스 이론을 통해 대기의 움직임이 작은 규모의 교란에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 했지만 결과는 ‘날씨는 너무 복잡해서 쉽게 알 수 없는 것’이라는 회의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카오스 이론은 무조건적 혼돈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로렌즈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그래프로 나타내 보면 중첩되지 않지만 어떤 끌림에 의해 이상한 패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선들이 나타난다. 로렌즈는 이를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라고 이름 붙였다. 흥미롭게도 이는 마치 나비의 모양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질서한 혼돈 속에서도 ‘이상한 끌개’와 같은 모종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일기예보관들은 뉴턴 식의 결정론적 수치예보를 폐기하는 대신에 입력값을 이리저리 변경하여 얻어낸 결괏값을 ‘조화롭게’ 조정하여 확률적 날씨예보를 제시하는 융통성을 발휘했는데 이러한 방식을 ‘앙상블 예보’라는 다소 낭만적 이름으로 불렀다.

초기 조건이나 모형 자체를 변화시켜 대충의 확률값을 제시하는 앙상블 예보는 날씨예보의 과학화를 열망했던 20세기 초 과학자들의 눈에는 매우 실망스럽고 수치스럽기까지 한 ‘조작’으로 비칠 일이다.

자신만만했던 결정론적 과학이 카오스의 나비에 의해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지만 ‘앙상블’이라는 타협을 통해 날씨예보의 정확도가 90%까지 높아지게 된 것은 인간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복잡계(系)인 대기 앞에서 겸허해진 것에 따른 보상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날씨#날씨 예측#나비효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