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중국 상하이(上海)에 위치한 화웨이 5세대(5G) 연구개발(R&D)센터에 들어서자 한국 기자단의 탄식이 쏟아졌다. 화웨이는 세계 최초로 5G R&D센터를 공개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기자단은 중국 연구진이 5G 장비를 개발하는 속살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화웨이는 여러 차례 접해 본 듯한 홍보관으로 기자단을 이끌었다.
실망은 다시 이어졌다. 기자단은 화웨이가 한국 이동통신 회사들에 판매하려는 5G 통신장비 관련 보안 이슈에 대한 간담회에 촉각을 세웠었다. 한국 통신사들이 화웨이 통신장비를 택했을 때 국내 민감한 정보가 ‘5G의 속도(?)’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았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본사 C레벨(임원진) 인터뷰를 섭외했다고 했다. 하지만 화웨이는 글로벌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총괄사장과 한국지사장 등 보안 이슈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기 어려운 인물을 내보냈다.
“한국에서 화웨이 장비에 대한 보안 우려가 심각하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숀 멍 화웨이 한국지사장은 “보안 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다”고만 답했다. ‘한국만을 위한 보안 기구의 검증을 받을 생각이 있는가’라고 묻자 “이동통신 표준화 국제협력기구(3GPP)와 같은 협의체에서 보안 규격을 만들고 있다”며 “한국 통신사도 보안 관련 기술 요구사항이 높다”고 피해 갔다. 화웨이는 영국 정부 산하 정보기관에서 검증까지 받았고 중국 정부가 화웨이에 고객 정보를 요청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귀국길에 집어든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중국과의 테크 전쟁이 시작된다’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중국 정부가 구글, 페이스북의 진입을 막기 위해 자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보호·육성하고 나아가 미국 기업을 인수해 기술을 탈취한다는 것이다. 화웨이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미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화웨이에 의혹을 제기했고 호주 정부는 최근 화웨이의 5G 입찰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 국내에서도 LG유플러스가 4G망을 구축할 때 미국의 우려로 주한미군 기지 일부 지역에서 화웨이 장비를 못 쓰게 한 적이 있다.
국내 이동통신사들은 향후 4, 5년간 통신장비 등 5G에 40조 원을 쓸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의 기술 수준은 경쟁사보다 1분기 앞서 있고 가격은 30% 이상 저렴해 천문학적인 금액이 화웨이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의 우려를 외면하는 화웨이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화웨이 입장에선 그간 사고 난 적도 없다며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보안이라는 문제가 그렇듯, 사고가 났을 때는 이미 늦어버리고 만다. 연초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 스캔들처럼 최악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란 어렵다.
기자는 화웨이가 5G R&D센터나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지을 계획을 발표하면서 보안 우려를 불식시키는 실질적인 조치를 내놓을 줄 알았다. 하지만 화웨이의 간담회는 ‘소 빠진 샤오룽바오(小籠包·중국식 딤섬)’처럼 끝나버렸다.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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