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축구도 커뮤니티에서 자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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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 등 명문 구단 다수 지역민이 주인
팬심 유지할 수 있는 기반 갖춰
국내 구단은 주로 기업이 운영, 시민구단도 관제 형태가 대부분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평소 축구에 눈길도 주지 않다 국가대표 경기에만 열광하는 사람을 ‘국뽕’이라 한다.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국가주의에 갇혀 승리에만 열광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나도 국뽕의 전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추억은 하나 있다. 유학 후 귀국해서 동네에 어린이 축구단을 만들었다. 서울의 작은 동네에서 전세를 살았는데 주말이면 이상한 현상이 눈에 들어왔다. 조끼 차림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데 어른의 지시하에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알고 보니 체능이라는 과외였으며, 서울에서는 이 과외에 돈을 주고 가입하지 않으면 어린이들이 축구 하나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어린이 축구팀을 만들었다. 물론 무료였고 가끔 짜장면이나 빵만 사주어도 아이들은 만족해했다. 인근 교회의 도움을 받아 축구화와 유니폼을 장만했을 때, 우리는 종로구 어린이 축구대회에 나갔다. 8개 팀 가운데 1등을 했으나, 우승팀을 해외에 보내주겠다는 서울시 전체 리그에 가서는 첫판에 탈락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 흩어졌지만, 아마 축구를 하자며 운동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동네 아저씨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독일에 승리한 후 영국의 친한 교수와 이메일을 주고받다 비슷한 걸 느꼈다. 요크라는 작은 도시에 사는 친구는 ‘이번에도 시즌 티켓을 살 것이다. 우리 팀은 7부 리그에 속하지만, 아들과 함께 응원을 가려 한다. 승리도 있겠지만, 고통도 함께할 것’이라고 메일을 보내왔다. 지역 공동체 축구클럽과 맨유 같은 축구 전문 기업이 공존하는 구조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메일이었다. 손흥민이 뛰는 토트넘은 인구 12만, 이청용이 뛰던 볼턴은 인구 13만의 작은 도시임에도 지역 공동체가 살아 있기 때문에 프로팀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스페인 바르셀로나 축구팀이 협동조합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역민을 중심으로 17만 명의 조합원이 출자했고, 여기에는 노동자부터 교황까지 다양한 얼굴들이 참여한다. 레알 마드리드 역시 시민구단이다. 팀에 출자한 회원을 소시오스(socios)라 하는데 9만 명의 지역민과 지지자들이 가입해 있다. 두 팀 모두에 구단주는 없고 소시오스들이 회장을 직접 선출한다. 양 팀은 현재 4조 원 이상의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는 세계적 팀이다.

윤정환 감독이 이끄는 일본 세레소 오사카는 그 지역 디젤 공장 직원들의 동호회로 시작했다. 1993년 지역 내 니혼햄 등 17개 중소기업이 공동 출자한 팀이다. 일본에는 다양한 디비전이 있어 여러 목표와 색깔이 공존한다. 승리나 상위 리그로 올라가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지역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으로 만족하는 팀이 대다수다. 팬들도 자신의 팀이 하위 리그로 떨어졌다고 대거 배신하지 않는다.

한국 프로축구는 재벌 지배의 구조다. 삼성, 현대, 포스코, GS 같은 대기업이 지배한다. 강원, 광주에 시민구단이 있긴 하지만 알고 보면 시민은 약하다. 구단주 직위부터 최문순 강원도지사, 이용섭 광주시장 등 단체장이 차지하고 운영 역시 관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무늬만 시민구단일 뿐 관치 구단인 셈이다. 한국 사회의 다른 사회경제 부문과 거의 동일한 재벌 지배 구조로 배구 농구 야구도 마찬가지다.

과연 스페인의 협동조합, 일본의 지역 연합, 영국의 동네 축구와 전문 축구기업의 결합, 한국의 재벌 지배 방식 중 어느 것이 가장 강력할까. 지역을 결합시켜 공동체에 행복을 주고 세계적 경쟁력을 키우려면 우리도 재벌 지배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 기업과 경제 측면은 너무나 큰 이권이 걸려 있다 하더라도, 스포츠는 응당 지역의 풀뿌리 공동체에 돌려주어야 한다. 기부 형식으로 지역에 선물하든, 아니면 운영이라도 먼저 지역 공동체에 완전히 맡기든 풀뿌리들이 스스로 춤추고 어울리며 감동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축구도 살아나고 공동체도 살아나게 될 것이다.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축구#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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