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이번 여름 방학 중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으면 기이하게도 너나 할 것 없이 토익 공부를 하겠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문득 입사할 때 토익 성적이 우수한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할까란 의문이 들었다. 요즘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정말 토익 만점자들일까, 아니면 다른 능력을 고루 갖춘 학생들일까?
필자는 실용영어와 영문학을 전공한 학자로 영어가 오늘날 국제화된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데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토익이 영어 능력의 대변자일 수는 없다. 더군다나 창의력, 현장 감각, 열정과 끈기, 상하좌우의 인간적 소통 능력을 더 중시하는 요즘 직장에서 전문적인 영어 구사 능력을 필요로 하는 특수한 업무 영역이 아니라면 영어 또는 토익은 필수적인 입사 요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각 기업들이 매우 전문적인 영어 능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별도로 영어를 오랫동안 심화 학습한 사람을 채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일반 사원까지 모두 토익 고득점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너무 소모적이다. 많은 대학생이 대학 시절 치열한 실전적 사회 경험이나 창업을 위한 치밀한 준비에 몰두하기보다 학원 등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토익 공부에 몰두하는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다. 기업마다 거의 획일적으로 토익 성적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타난 학생들의 불가피한 조건반사적 대응이다.
기업으로선 별도의 영어 시험을 치르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고 이왕이면 영어 성적까지 좋은 인재를 선발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단지 높은 토익 성적이 기업의 성과 증진과 상관성이 있다는 어떤 증거도 제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채용 관행은 타당하지 못하다. 기업별 인재 개발의 차별화에도 어긋난다. 실제 국내 기업에서 영어를 자주 사용하며 일하는 분야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국내의 한 대기업이 몇 년 전까지 사내에서 무조건 영어를 쓰도록 했다가 본질적 업무와 무관한 일로 직원 사기 및 성과 하락을 야기해 폐지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토익은 국내에서 연간 200만 명 이상이 응시하고 있고 전 세계 응시자 가운데 한국인이 절반 이상일 정도로 한국만의 ‘이상과열’ 현상이다. 토익은 기업 입사 제도의 차별성 상실, 과도한 비용 지출, 국부 유출 등의 문제 외에도 요즘 뜨거운 이슈인 채용 차별의 문제를 일으킨다. 대입 성적이 높은 학생이 많은 대학의 졸업자일수록 상대적으로 토익 점수가 높을 수밖에 없어 다른 대학 출신자들은 면접 기회도 얻지 못하고 서류전형 단계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토익 고득점이란 조건이 기회 봉쇄의 장벽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채용 시장에서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줄일 ‘열린 채용’이 실현되려면 적어도 토익의 획일적 채택은 사라져야 한다. 그 대신 기업들이 꼭 필요한 경우에만 별도로 영어 능력을 측정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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