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지은 베르사유궁전에 왕의 시종장으로 입궁한 귀족이 되어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라. 단, 베르사유궁의 특징과 그곳에서 지내는 귀족들의 생활상과 풍습에 대한 묘사가 포함돼야 한다.”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프랑스 루이 14세의 절대왕권에 대해 배우고 나서 본 역사 시험 문제였다. 아이는 집에 와서 시험 문제가 “재미있었다”며 신나게 이야기했다. 아직 프랑스어가 서투른 상태에서 역사를 처음 배우는 거라 시험 전에 아이는 겁을 먹고 있었고, 결국 아주 좋은 점수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첫 시험 덕분에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여기고 흥미를 가지게 돼 이후에 역사를 좋아하고 잘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프랑스 고등학교에서는 역사 시간에 식민지-제국주의, 1, 2차 세계 대전, 냉전 시대 등 근현대사를 중점적으로 배운다. 다양한 교과서들이 있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이 교육과정에 따르고 있다.
이 중 냉전 시대 부분에서는 ‘사례 연구’로 베트남전과 한국 전쟁이 서너 쪽 정도 다뤄진다. 교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거의 모두 베트남전을 가르쳐 왔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프랑스에 정착한 베트남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 얼마 전까지 프랑스 역사 교사들조차 한국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교포 학생들은 불만이 많았고 속상하다고 하소연하곤 했다.
그런데 프랑스 학교에서 일하던 지난 6년 동안 이런 분위기가 변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한국어가 대학입시 정규과목으로 채택되고, 언론을 통해 촛불 혁명과 대선 소식이 전해지자, 동료 교사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 교사들은 나에 대한 관심과 친절이 늘었고, 한국 역사에 대한 질문도 많아졌다. 케이팝이나 드라마뿐 아니라 한국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는 프랑스 중·고등학생들도 늘기 시작했다. 한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역사 교육을 중시하고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의 역사에도 관심을 갖는 프랑스 학교의 분위기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 지인들에게 오는 메일이 지난달부터 부쩍 많아졌다. 남북 회담에 이어 북-미 회담이 프랑스 언론에서도 꽤 크게 자주 다루어지자, 파리 학교의 옛 동료들과 제자들은 생생한 소식과 정보를 내게 직접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또,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학생들은 월드컵에서 우리가 독일에 멋진 승리를 거둔 것을 프랑스의 16강 진출 못지않게 기뻐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내왔다.
프랑스 학교의 옛 동료 카트린은 작년 9월, 내가 한국에 다시 돌아간다고 했을 때, 북-미 갈등과 전쟁 위험성을 이야기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최근 연이은 한반도의 정세 변화에 흥분하여 얼마 전에는 ‘축하’한다는 메시지까지 보내 왔다. 카트린은 자신은 곧 한국전쟁에 대해 가르치는 몇 안 되는 프랑스 고등학교 역사 교사 중 하나가 될 거라며 자랑(?)했다. “역사 시간에 가르칠 게 늘겠는걸. 한국은 이제 세계사에 중요한 획을 그을 테니까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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