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소통이 줄면 친밀감도 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7일 03시 00분


<65>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Just the Two of Us’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주가 시작됩니다. 물을 잔뜩 먹은 건반이 높고 몽글몽글한 음으로 지붕에 내려앉는 빗소리를 묘사합니다. 그 소리에 마음이 젖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베이스가 초킹으로 “두우둥∼!” 하면서 차양에 고였던 물을 아래로 뚝뚝 떨어뜨립니다. 베이스의 여운은 떨어진 물방울이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모습이죠.

“수정 같은 빗물은 그 다음에 올 밝은 햇살을 위한 것이기에 아름다운 것이죠. 사랑의 슬픔은 눈물을 흘리게 하지만 그 눈물로는 꽃을 피울 수 없어요. 우린 마음속에 무지개를 품고 인내하다가, 기회가 왔을 땐 최선을 다해 그것을 잡아야 해요. 우리가 함께 노력한다면 우린 해낼 수 있어요. 당신과 나 둘이서….”

주말인데 비가 내립니다. 아이들은 늘 바쁘고 아내와 저만 집에 있습니다. 냉장고를 뒤져 남아 있는 것들을 꺼내 별말 없이 식사를 마치고, 나란히 앉아 TV를 켭니다. 아내는 밀려 있던 드라마를 봅니다. 재미있나 봅니다. 저는 그 옆에서 멀뚱거리다 말하죠. “과일 깎아줄까?” 아내가 깜짝 놀라 저를 바라봅니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한때 미친 듯이 사랑했던 부부가 이제는 단둘이 있는 것 자체가 어색합니다. 서로 할 말도 별로 없고 함께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죠. 어떡하다 이렇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제가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이라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는 대화를 피해 왔기에, 따라오며 소통과 공유를 요구하던 아내도 지쳤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소통이 줄어들면 공유하는 것도 줄어들고 친밀감도 줄어듭니다. 친밀감이 줄어들면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지 않고 위하지도 않는다고 여기게 되고, 의심하고 분노하게 되죠. 아내나 남편이나 서로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늘 상대방의 존중과, 필요한 존재라고 확인할 수 있는 신호들과,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니까요.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대화를 유발합니다. 먼저 서로를 비난하며 싸우게 되죠. 내 고통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으려는 것입니다. 비난은 둘 중 더 힘이 있는 쪽이 더 잘하죠. 힘에서 밀리는 쪽은 살아남기 위해 갈등을 회피하기 시작합니다. 비난하던 쪽도 더 비난을 하면 상대방이 더 멀리 도망칠 것 같아서 자제를 하지만, 둘 다 늘 상대방의 상태에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있게 됩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싸움이 지속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지쳐가게 되죠.

부부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갈등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라 부부의 친밀감을 높이는 끈끈한 결합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 불가하곤 하니까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결합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가가야 합니다. 현실적인 문제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확신할 때 다가갈 수 있죠. 서로 편안하게 접근하고 적절하게 반응을 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친밀감의 회복은 시작됩니다.

나보다는 상대방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로 반응할 수 있어야 친밀감이 높아집니다. 보살핌을 받는 아이의 태도가 아니라 ①요구받은 도움을 주고 ②관심을 가지고 경청하고 ③더 좋아지기 위해 합의하여 협력하고 ④나도 실수를 하기에 상대방의 실수도 용서하고 ⑤상대방을 잘 이해하게 되어 요구하기 전에 먼저 배려하는 어른스러운 태도가 상대방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입니다. 저에겐 늘 부족한 부분이죠. 또 비가 많이 올 거랍니다. 다음에 비가 내릴 때에는 이 노래를 틀고 아내를 위한 어른스럽고 따뜻한 태도를 보여야겠습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just the two of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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