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흑백사진이 있다. 앞으로 팔을 두르고 앉아 있는 흑인 남자의 사진이다. 얼굴은 안 보이고 상체와 하체의 일부만 보인다. 그의 주머니는 담배쌈지, 담뱃대, 줄자, 메모장 등으로 빼곡하다. 팔목에는 플라스틱 밴드와 얇은 팔찌가, 허리띠에는 휴대용 구급함과 주머니칼, 시계가 있다. 왼쪽 팔에는 세 개의 별과 함께 ‘보스 보이(BOSS BOY)’라고 쓰인 계급장이 있다.
우두머리를 뜻하는 보스와 소년을 뜻하는 보이가 결합된 보스 보이, 그 말이 역사 속의 아픈 상처를 소환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세계의 몸에 난 사악한 종기”라고 표현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횡행하던 시절, 백인들은 흑인 남자들을 ‘보이’라고 불렀다. 아이도, 어른도, 심지어 노인도 남자라면 다 보이였다. 흑인 남자들은 남성성을 거세당하고 중성인 보이가 됐다.
196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금광의 나라였다. 세계의 금 생산량의 절반이 그곳에서 생산되었다. ‘보스 보이’는 거기에 동원된 흑인 광부들의 우두머리였다. 흑인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던 보스 보이, 그 너머의 지위는 백인들의 차지였고, 보이들이 캐낸 금도 백인들의 차지였다. 데리다의 말처럼, 그야말로 ‘폭력적인 위계질서’였다.
그런데 사진은 인종적인 불의를 증언하면서도 분노를 내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분노가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게 하는 것이 작가의 미학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골드블랫은 그러한 작가였다. 그는 카메라가 선전에 이용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보스 보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말해주듯, 그는 극적인 모습이 아니라 일상성 속에서 상처와 불의가 드러나기를 바랐다. 조용하고 수수한 저항의 길을 택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보스 보이는 ‘팀장(Team Leader)’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그러나 사진은 아직도 과거의 아픈 상처를 소환하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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