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에게 묻고 싶다. 중학교 1학년 때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몇이나 될까? 기자는 중1 때 만화가, 외교관, 개그우먼, 의사 등 지금으로선 도무지 맥락을 모르겠는 꿈을 꿨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지만 그땐 진지했다. 중학생 때란 그런 시기인 것이다. 당연하다. 말이 중1이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 아닌가.
그런데 요즘 중학교 1학년들은 정부로부터 ‘한 학기 또는 1년간 너의 진로를 탐색하라’는 특명을 받는다. 이른바 ‘자유학기제·자유학년제’다. 제도의 취지는 이상적이다. 교육부·교육청은 ‘중학교 시절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알고, 삶과 직업에 대한 가치관을 세울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중2병, 학교 폭력, 자살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기간 중간·기말고사 같은 시험은 보지 않는다. 시험을 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반긴다.
문제는 자유학기제의 목표인 ‘진로 탐색’의 수준이 한없이 낮다는 점이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인터뷰하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진로 체험이래서 뭘 했나 했더니 비누 만들기를 했대요. 문화센터에서 1만 원만 내면 하는 걸 왜 학교에서 하는지….” “친구들과 성남에 있는 무슨 직업 체험관을 갔다 왔다나? 그거 한번 간다고 꿈이 생겨요?” “선생님이 공문을 보내서 오케이가 돼야 가거든요. 주로 받아주는 곳이 경찰서, 우체국이라 거길 가더라고요.” “아빠가 직장에 다녀도 사장이 아닌 이상 일터에 애들을 데려갈 수 있나요. 부모 힘에 따라 진로 체험도 달라져요.”
학부모들은 자유학기제가 사실상 ‘시험만 안 보는 학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학원 안 다니면 아이 학업 상태를 전혀 알 수가 없어요. 학원 좋은 일만 시키는 거죠.” “넋 놓고 있다가 중2 돼서 첫 시험 보면 기절해요. 수학 같은 건 못 따라잡아요.” 정부는 매년 자유학기제 우수 사례 시상식 등을 하며 정책 홍보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0.1%의 ‘예외적’ 우수 사례일 뿐이다.
자유학기제의 취지 구현은 애초에 무리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중1이란 시기 자체가 진로 탐색에 한계가 있다. 진로 체험을 돕는 학교와 선생님에게 고급 체험 기회를 제공할 힘도 없다. 이런저런 기업·기관에 열심히 공문을 보내 볼 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이럴 바에야 ‘자유학기제’ 대신 ‘사람학기제’를 운영하면 좋겠다. 사춘기 무렵인 중1 시기에는 진로 탐색보다 사람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학교에서 꼭 배웠어야 할 것들을 못 배운 게 많다. 내 가족을 이해하는 법, 내 이웃을 알아가는 법부터 남녀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법,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법,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 늙음과 죽음에 대한 이해까지….
가깝지만 잘 몰랐던 엄마 인터뷰 해보기, 윗집·아랫집과 음식 나눠보기, 한쪽 눈을 가리거나 귀를 막고 지내면서 몸이 불편한 친구를 이해하는 체험 해보기, 입관 체험 등…. 삶의 중요한 의미들을 직접 체험하고 생각할 기회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은 선생님이 기업과 기관에 ‘공문 노역’을 하지 않아도 적절한 프로그램과 연수 기회만 마련되면 누구나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나의 미래’를 위한 진로 탐색에 앞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사람 탐색의 시간을 가지는 중1이 되었으면. 마침 대통령의 슬로건도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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