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의 뫔길]87세 원로 스님의 단식… 조계종의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2일 03시 00분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본산임을 알리는 조계사 일주문의 편액(현판). 동아일보DB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본산임을 알리는 조계사 일주문의 편액(현판). 동아일보DB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대한불교조계종의 개혁과 설정 총무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설조 스님의 단식이 11일로 22일째를 맞았습니다. 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을 이끌었던 개혁회의 부의장을 맡았고 불국사 주지와 법보신문 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9일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에서 활동 중인 A 스님의 전화가 있었습니다. “87세 원로 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이 계속되고 있다.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이유야 어쨌든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니 꼭 단식을 중단하시도록 설득을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2시간 뒤 이 단체 관계자의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A 스님으로부터 말을 전해 들었다면서 “매일 아침 스님에게 단식을 그만두시라고 요청을 드리고 있습니다.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이 단식을 그만두시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러나 스님은 설정 원장 측에 변화가 없으면 중단할 생각이 없다고 하십니다”라는 내용입니다. 또 설정 총무원장 측에 1994년 개혁회의 부의장인데 비공식으로라도 방문해서 단식 중단을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메시지를 넣고 있다는 문자도 이어졌습니다.

하루 뒤인 10일 그 방문이 이뤄졌지만 총무원 홍보국과 이 단체가 낸 입장문을 보면 두 원로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간단히 말해 “종단 기구를 준비해 개혁하겠으니 일단 단식을 멈춰 달라”, “믿을 수 없으니 먼저 물러나라”는 것이었죠. 그걸로 대화는 끝이었습니다.

이 단체는 각각 은처자(隱妻子)와 성추문 논란을 이유로 설정 총무원장과 현응 포교원장의 퇴진을 요구해왔지만, 당사자들은 사실무근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역시 종단개혁에 힘을 보낸 개혁회의의 멤버였습니다. 표면적으로 두 원장의 거취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이면에는 20여 년 지속되면서 낡은 옷이 된 ‘94년 체제’와 개혁그룹의 기득권 세력화가 문제점으로 깔려 있습니다.

1994년 당시 서의현 원장이 3선을 시도하자 종단의 개혁세력은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범종추)에 이어 개혁회의를 만들어 이를 저지했죠. 통도사 방장이던 월하 스님이 개혁회의 의장을 맡았고, 지선 청화 도법 영담 정우 현응 명진 지홍 지하 학담 스님 등 중진과 소장 그룹이 개혁을 주도했습니다. 그 결과가 94년 체제죠. 개혁세력은 교육원, 포교원, 사법부격인 호계원을 발족시켜 종단 운영을 총무원 중심에서 벗어나도록 했고, 총무원장 선거인단도 81명에서 321명으로 확대했습니다.

이들은 또 화엄, 무량, 무차, 보림회 등 종책으로 불리는 모임을 만들어 종단의 국회 격인 종회에서 활동했고, 선거 때마다 종권(宗權)은 이들의 합종연횡으로 결정됐습니다. 자승 전 총무원장은 개혁세력에 속하지 않았음에도 승자가 됐다는 평입니다. 은사인 정대 스님의 후광과 뛰어난 정치력으로 총무원장에 올랐고 종단개혁 이후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했죠.

자승 전 원장의 재임 8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화엄, 금강, 법화, 무량, 무차회 등이 포함된 불교광장이라는 거대 모임입니다. 이 모임은 종회의 80% 안팎을 차지하며 절대 다수를 이뤘습니다. 반면 옛 보림회를 중심으로 한 법륜승가회가 이른바 야당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직선제와 선거인단 확대 등의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유야무야 끝났고, 불교광장은 기존 선거제도에서 설정 스님을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시켰습니다.

종단이 바뀌어야 한다는 게 이론의 여지가 없는 스님들의 민심입니다. 하지만 바뀌겠냐며 침묵하고 있는 그룹이 다수입니다. 두 차례 선거를 통해 종단개혁에 나섰던 B 스님은 “20여 년에 걸쳐 종단 운영이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됐다”며 “321명으로 치르는 선거인단 선거가 바뀌지 않는다면 종단개혁은 요원하다”라고 합니다. 출가자들이 세속화하면서 청정승가(淸淨僧伽) 실현을 위한 노력과 종단 내부의 민주화에 소홀했다는 반성도 이어집니다. 조계종에 따르면 현재 등록 승려 수는 1만3000여 명에 이릅니다. 비구니의 경우 재적 승려의 절반을 웃돌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투표인단은 10명에 불과한 게 현실입니다.

종단의 기득권 세력이나 현 지도부도 싫지만 적폐청산 그룹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습니다. C 스님은 “종단 내부 문제를 걸핏하면 외부 세력과 연계시켜 정치 문제로 만들었다”며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중립적이면서도 존경받는 원로와 중진이 현 상황에 대한 해법을 주도해야 합니다. 이들이 종단 지도부를 둘러싼 여러 논란에 대한 진실 규명과 종단개혁에도 나서야 합니다.

생명보다 앞서는 가치는 없습니다. 종단개혁을 이룬다 해도 생명을 희생시킨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생명을 놓치면 공멸뿐입니다.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dunanworld@donga.com
#대한불교조계종#설조 스님#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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