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나 혼자만의 습관은 아닐 것이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의사 뒤쪽에 붙어있는 졸업증명서나 자격증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전공분야나 학위 내용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확인하고 싶은 속내는 ‘출신 학교’다. 이 의사와 아무런 친분관계가 없어도 세칭 명문 의대를 나온 게 확인되면 왠지 마음이 놓인다. 명문대 출신 의사들이 병원 간판에 자신이 졸업한 대학 배지를 큼직하게 새겨 넣는 것도 환자들의 이런 심리를 노린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양가죽효과(sheepskin effect)’라고 한다. 옛날 서양에선 좋은 학교의 졸업장이나 고급 자격증을 양가죽으로 만들었다. 국가나 사회가 권위를 인정하는 증명서인 만큼 그 상징성이 적지 않았다. 특히 채용 등 짧은 시간에 사람을 판단해야 할 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해 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블라인드 채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입사 희망자들의 출신학교, 고향, 외국어 점수, 가족 사항 등 이른바 ‘스펙’을 보지 않고 선발하는 방식이다. ‘양가죽’에 구애받지 않고 실질적인 능력만 보겠다는 것이다. 채용비리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공기업들엔 이미 의무화되었고, 민간 기업까지 대세로 여겨진다.
블라인드 채용은 선발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측면에선 확실한 효과가 있다. 학연, 혈연, 지연 등이 끼어들 틈이 없다. 하지만 공정과 투명은 채용의 원칙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 채용의 분명한 목적은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뽑는 것이다. 블라인드 방식이 이런 목적까지 채워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블라인드 채용방식에서 최고의 인재를 가려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일한 방법이 면접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또 쉽지 않다. 면접을 제대로 하려면 여러 사람이 오랜 기간 관찰해야 한다. 정부에서 고위 공무원 승진 인사 때 적용하는 ‘역량평가’조차 최고의 전문가들을 다수 투입하고도 거의 하루 종일 걸린다. 제대로 된 역량을 파악하려면 그만큼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기업에서 신입사원 선발 때 주어지는 면접시간은 한 사람당 5∼10분, 길어야 20분 정도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짧은 질의응답 과정에서 제대로 역량을 평가하는 능력이 절대 필요하다. 채용시장에서 ‘면접 전문성’이 핫이슈로 떠오르는 이유이다. 실제 최근 10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던 모 은행 신입행원 채용과정에선 최종 면접을 내부 임원 2명과 외부 전문가 2명이 함께 진행했다. 은행 채용과정에 외부 면접관이 참여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채용과정의 투명성과 전문성 두 가지 효과를 모두 노리겠다는 취지로 응시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면접 전문성’이 강조되지만 실제 ‘전문 면접관’은 아직 많지 않다. 올바른 채용문화 정착을 위해선 수준 높은 면접관들의 양성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채용 면접관 자격증’(한국컨설팅산업협회)제도 활성화 노력 등은 반가운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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