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천광암]최저임금 차등화 못할 이유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3일 03시 00분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벼랑 끝에 간신히 발끝을 걸치고 서 있는 사람을 밀어서 떨어뜨리는 데는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다. 손가락 하나로도 충분하다. 오랜 불경기와 씨름하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상당수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들에게는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이 바로 그 손가락에 해당한다.

사용자 측이라고 해서 최저임금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못 올려주니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는 아우성이 나오는 이유는 감당 능력을 벗어난, 가파른 인상 속도와 경직된 결정 구조 때문이다.

한국의 최저임금이 얼마나 급격하게 올랐는지는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2010년 4110원에서 2018년 7530원으로 83.2% 올랐다. 내년 인상률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꼬박 2배가 되는 셈이다. 이에 비해 미국의 연방최저임금은 2009년 이후 줄곧 7.25달러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중이다. 연방최저임금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주(州)도 많지만, 연방 기준을 그대로 따르는 주도 펜실베이니아 등 22개에 이른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2010년 713엔에서 2018년 848엔으로 올랐다. 인상률이 한국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단순 환율로 계산하면 한국의 최저임금은 2018년 현재 일본의 88% 수준이지만, 구매력을 감안한 환율로는 이미 일본을 추월한 상태다.

최저임금이 아무리 가파르게 올라도 경제가 미국이나 일본만큼 좋아졌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 현실은 정반대이기 때문에 중소상공인들 사이에서 궁여지책으로 나오는 요구가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한국처럼 최저임금 제도를 획일적, 경직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은 많은 예외를 둬서 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한다. 일례로 소규모 신문사나 농업 분야의 경우 경영난을 감안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 신문배달원의 경우도 예외다. 10대들의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작은 배려다. 네덜란드는 최저임금을 15, 16, 17, 18, 19, 20, 21, 22세 이상으로 나눠서 연령별로 차등 적용한다. 일본은 각 지역마다 생계비가 다른 점을 감안해 47개 광역지자체가 제각각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여기에 병행해서 특정 지역 내 특정 산업은 별도의 최저임금(특정최저임금)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현재 233개의 특정최저임금이 존재한다. 주요 선진국 중 경제구조가 우리와 가장 유사한 일본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을 보면 한국이 못 할 까닭이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4년 11월 경영난에 시달리던 음식점 업주들이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 모여 솥단지 400여 개를 내던지며 항의시위를 벌인 일이 있다. 여기에서 싹이 보인 자영업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가장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난제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최저임금을 둘러싼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가장 큰 원인이 돼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취임 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영업 문제가 현 정부에도 최대 난제 중의 하나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정부가 최저임금 차등화 문제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 뒤에 숨어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 변죽을 울리는 지원책만 내놔서는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진지한 대화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최저임금 차등화#자영업자#최저임금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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