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신혼부부 1년 차. 연말 이사를 앞두고 아파트와 빌라를 두고 고민했다.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이구동성으로 감가상각이 빠르고 치안이 불안한 빌라보다 아파트가 낫지 않겠느냐는 반응이었다. 아파트로 가닥을 잡은 뒤 매매와 전세를 두고 저울질을 했다. 우리 부부는 2년마다 전세금을 올려주느라 불안에 떨 바엔 당장은 힘들어도 매매를 하자는 ‘통 큰 결단’을 내렸다.
이달 초, 맞벌이 신혼부부들의 성지(?)라 불리는 서울의 당산역, 목동역, 마포역 인근 아파트를 두루 둘러봤다. 대략 지은 지 20∼30년은 된 아파트였다. 당산역 일대 20평형대(전용면적 59m² 정도) 아파트는 7억 원대 초중반, 목동역 인근은 같은 기준으로 7억 원대 중반이었다. 속칭 요즘 좀 뜬다는 마포역 주변은 7억 원대 후반이었다.
‘푹푹’ 찌는 날씨도 날씨지만 ‘억억’ 거리는 아파트를 둘러보느라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갔다. 공인중개사로부터 마포역 일대 분위기를 전해 듣고는 또 한 번 다리 힘이 풀렸다. 지하철역에서 떨어진 언덕 위 아파트라 그나마 이 정도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말로는 모두 ‘역세권’이라지만 마을버스를 타지 않으면 오르내리기 힘들 정도라 역세권이란 말이 궁색할 정도였다. ‘진짜 역세권 아파트’는 1, 2억 원을 더 줘야 한다니….
‘역세권은 포기해야 하나.’ 상실감이 절정에 이르던 차에 초중고교 동창인 동네 친구가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청약을 넣어 서울의 20평형대 아파트에 당첨됐다는 것이다. 나보다 1년 먼저 결혼한 친구는 공무원 맞벌이 신혼부부인 데다 아이도 한 명 있어 조건에 딱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친구가 청약에 당첨된 아파트도 역세권이라기에 인터넷으로 시세를 검색해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역세권에 위치한 새 아파트의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매물도 거의 없었지만 그마저도 나와 있는 아파트의 호가가 8억 원대 후반∼9억 원대 초반에 형성되어 있었다. 8개월 새 분양가 대비 프리미엄이 2억5000만 원가량 붙은 것이다. 친구는 아파트 청약으로 월급쟁이가 10년은 모아야 할 돈을 ‘한 방’에 벌었다.
친구의 ‘로또 당첨’에 박수를 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혹자는 상실감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저렴한 집을 사든, 전세를 들어가든 편히 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이런 ‘상실의 시대’ 속에서 우리 부부처럼 매매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지난해 30대의 수도권 주택매매 거래 비중(전년 대비 1%포인트 상승한 30.7%)도 증가했다고 하지 않나.
요 며칠, 주춤했던 서울의 집값이 다시 꿈틀댄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또 다른 상실감이 밀려들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언제쯤 신혼부부가 마음 편히 집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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