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길진균]노회찬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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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도 50년 동안 같은 불판에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까맣게 타 버린다. 이제는 판을 갈아야 한다.” 정치판의 기득권을 깨야 한다는 메시지를 불판 교체에 빗댔다. 2004년 17대 총선 정국,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의 이 말은 최고 히트작이었다. 민노당은 비례대표 득표율 13%라는 돌풍을 일으켰다. 지역구 2석과 비례 8석을 확보했다. 당선 예상권 밖인 비례대표 8번 후보였던 노 사무총장도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그는 여의도에서 진보정치의 대중화를 이끄는 기수가 됐다.

▷학창 시절 그는 첼리스트를 꿈꿨다. 경기고 시절,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들 앞에서 종종 첼로를 연주했다. 유신 시절 ‘박정희 타도’ 유인물을 제작하고 시위를 벌이던 그는 경찰의 감시를 받는 고등학생이 됐다. 고려대 진학 후엔 용접 자격증을 따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노 의원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살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지만 그는 민노당 내에서 줄곧 당내 친북주의 청산을 주장해 주사파 계열과 결별했다.

▷노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드루킹 진영으로부터 받은 금품이 원인이 됐다. 그는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며 “죄송하다”고 유서에 적었다. 지지자들에게 줄 충격과 당이 입을 피해 등에 대한 압박과 절망감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 등 여의도의 특권·기득권 폐지를 주창해온 그의 죽음은 깨끗한 정치를 열망해온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노 의원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한 특검 수사는 어제 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종료됐다. 노 의원 사건은 특검 수사의 본류도 아니었다. 훨씬 크고 무거운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도 태연하게 버티는 여의도 정치인이 수두룩한데,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는지 안타깝다. 노 의원 사건은 비극적이지만 그렇다고 드루킹 수사가 흔들려서도 안 될 것이다. 그의 죽음이 비리와 부정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정치권 풍토에 경종을 울린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노회찬#드루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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