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염희진]유통매장의 ‘세 번째 단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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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산업2부 기자
염희진 산업2부 기자
요즘 유통업계 화제인 ‘삐에로쑈핑’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새로 선보인 잡화점 브랜드다. 개점 한 달째인 오늘까지 하루 평균 1만 명이 다녀갔고 아직도 주말엔 줄을 서서 입장한다.

대형마트의 4분의 1 규모인 이 잡화점에는 명품 가방부터 100원짜리 과자까지 4만여 품목이 두서없이 진열돼 있다. 평일 오전 매장을 한 바퀴 둘러봤는데 ‘정신없다’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이미 사고 있다’ ‘슬기로운 탕진생활’ 등 재미있는 문구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뭐라도 하나 사고 싶게 만드는 신기한 아이템이 많았다. 커튼에 가려진 성인용품 코너는 젊은 커플들의 데이트 명소가 됐다고 한다.

일본 잡화점 체인 ‘돈키호테’를 따라 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삐에로쑈핑은 인터넷과 모바일 쇼핑을 즐기는 젊은층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들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B급 정서의 콘셉트를 내세우며 젊은 취향의 콘텐츠로 매장을 채우니 실제 구매 고객 절반 이상이 20, 30대였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 전통적인 유통 채널에서 20,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해마다 줄고 있다. 반면 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78조 원을 돌파했고 이 중 모바일 비중이 60%를 넘었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온라인쇼핑이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여러 브랜드를 한 공간에 모아둔 백화점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다. 싼 가격을 내세우던 온라인쇼핑도 이제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토대로 한 상품 제안 서비스나 배송 편의성을 위한 투자를 늘리며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위기에 처한 오프라인 유통매장은 여러 돌파구를 찾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엘큐브’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백(百)화점이 아닌 세분된 타깃을 겨냥한 ‘미니화점’을 표방했다. 엘큐브 홍대점은 전 층을 게임 콘텐츠로만 채웠다. 홈플러스는 서로 다른 유통채널의 융합을 시도하며 창고형 매장과 슈퍼마켓을 결합한 ‘홈플러스 스페셜’을 선보였다.

일본의 서점 체인인 ‘쓰타야’도 사양 산업인 줄 알았던 서점이라는 공간에 기획과 콘텐츠를 접목시키며 성공을 거뒀다. 우선 공급자의 시각에서 책을 분류하는 기준부터 바꿨다. 소비자의 관심사에 따라 책을 배치했다. 육아 책 코너에는 다양한 주제로 분류한 책과 육아용품이 진열돼 있고 그 옆엔 키즈카페가 있는 식이다. 일본 전역에 1400여 개의 쓰타야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컬처컨비니언스클럽(CCC)’은 서점 체인이 아닌 기획 회사를 지향한다.

마스다 무네아키 CCC 사장은 소비사회를 세 가지 단계로 분류했다. 첫 번째 단계는 물건이 부족한 시대로 어떤 상품이든 용도만 충족하면 팔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로 효과적인 판매 플랫폼을 제공하는 게 중요한 시기다. 세 번째 단계는 플랫폼이 넘쳐나는 시대다. 마스다 사장은 이 시기에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주고 제안해주는 기획과 콘텐츠를 강조했다. 한국의 유통산업도 이제 ‘세 번째 단계’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염희진 산업2부 기자 salthj@donga.com
#유통매장#삐에로쑈핑#신세계#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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