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부모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영·유아 수십만 명이 접종한 DPT(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백신 등이 ‘가짜 백신’으로 판명됐다. 창춘창성(長春長生)바이오테크놀로지가 가짜 백신을 제조한 사실을 보건당국이 알고도 쉬쉬했던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분노한 민심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 공산당으로 향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이던 시 주석이 “끝까지 조사해 책임을 물으라”며 직접 수습에 나섰지만 민심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소리(VOA)는 중국 각지 어린이병원에서 “독(毒)제도 독정부, 중국 공산당을 전복하자”는 낙서가 발견됐다고 24일 전했다. 주중 미국대사관 웨이보에는 “중국 안에 미국산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접종소를 설치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과감히 칼을 뽑고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나선 시 주석으로선 굴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신 파동이 일파만파로 퍼진 배경에는 지난 40년간 급속히 성장한 중국 중산층이 있다. 개혁·개방의 혜택을 본 이들은 3월 시 주석이 장기집권의 길을 닦고 공산당 독재를 강화한 개헌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을 터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경제가 침체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꾹꾹 참던 민심의 뇌관을 건드린 것은 ‘내 아이의 안전’이었다. 백신을 맞힌 부모부터가 바로 1979년 한 자녀 갖기 운동 이후 태어난 ‘소황제’가 아니던가. 정부를 향한 분노의 수위가 10년 전 멜라민 분유 파동 때와는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유능한 관료가 국가를 이끈다는 현능주의(meritocracy)가 서구 민주주의보다 낫다는 자부심이 유난히 강한 중국이었다. 그러나 이번 백신 파동으로 국민에게 책임지지 않는 현능주의의 허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데이비드 런시먼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저서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에서 경제, 전쟁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민주주의는 유연성과 다양성을 발휘해 극복했다고 분석했다. 비록 혼란이 뒤따를지라도 소수의 결정에 의존하는 전체주의보다 적응력이 뛰어났다는 설명이다. 과연 ‘시진핑 체제’는 이번 위기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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