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상처를 어떻게든 보듬고 치유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서른여덟 살의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올해 4월, 아던 총리는 영국을 방문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영연방 지도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버킹엄궁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한 총리의 옷차림이 특이했다. 몸에 두른 이색적인 망토 때문이었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추장들이 과거에 두르던, 새털로 장식된 아름다운 망토였다. 마오리족의 서글픈 역사를 환기시키는 망토를 두른 총리는 참석자들에게 건배를 제안하면서 마오리 속담을 인용했다. “헤이 아하 테이 메아 누이 오 테이 아오. 헤이 탕아타, 헤이 탕아타, 헤이 탕아타.” 번역하자면 이렇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 사람, 사람입니다.” 총리는 마오리 망토를 걸치고 마오리 속담을 인용함으로써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돌아보고 어루만지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영국에 갔을 때 총리의 배 속에 있던 아이가 두 달 후에 태어났다. 딸이었다. 총리는 딸의 이름을 ‘니브 테이 아로하’라고 지었다. 아일랜드 이름에서 유래한 ‘빛나다’라는 의미의 니브, 마오리족의 말로 “사랑”이라는 의미의 테이 아로하. 두 개의 말이 절묘하게 결합돼 ‘빛나는 사랑’이 되었다. 자신의 임신 중에 보여준 뉴질랜드 사람들의 지지와 너그러움, 그중에서도 특히 마오리족 공동체의 지지와 너그러움에 대한 보답이었다. 어느 신문이 말했듯, 총리는 딸 이름을 그렇게 지음으로써 마오리족을 포함한 뉴질랜드인 모두를 딸의 대부모로 만들었다.
이보다 아름다운 정치적 상상력이 또 있을까. 그렇다, 상처의 치유는 아이의 이름이기도 한 테이 아로하, 즉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상처가 다 아물 수는 없겠지만 식민역사의 발굽에 짓밟힌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이 그러한 사랑이 있음으로 해서 조금이라도 견딜 만한 것이 된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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