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새로 만든 무궤도전차를 보며 크게 만족해하는 사진이 4일 북한 매체들에 실렸다. 김정은은 “대부분의 부품을 국산화하고 손색없이 잘 만들었다”고 치하하고 “인민들이 낡아빠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불편을 느끼고 거리에는 택시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는 전망이 보인다. 정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를 보니 3년 전 김정은이 자체로 만들었다는 새 지하 전동차를 둘러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는 “수입병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을 실천으로 확증해줬다”며 흥분했다. 나중에 들으니, 중국에서 전동차를 수입하려 했는데 너무 비싸 김정은이 200만 달러를 줘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기관차도 만들었는데 전동차 하나 못 만들겠는가”라며 내리먹이는 지시에 몇 달 만에 급히 만들다 보니 주요 부품을 모두 중국에서 사 와서 조립한 것에 불과했다. 평양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3년이 지난 지금 북한제 전동차는 딱 한 개 편성만 뛴다고 한다. 부품 사올 돈이 없으니 그 이상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3년 뒤 김정은이 이번엔 버스를 보고 똑같이 기뻐하고 있다.
사실 오늘 칼럼은 버스 부품 국산화율이나 따지려 쓰는 게 아니다. 김정은이 대중교통 문제의 해법을 새 버스에서 찾았다면 현실을 모르고 있다.
평양에서 가장 ‘자본주의화’된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대중교통이다. 평양엔 표 받는 차장이 없는 버스도 많다. 북한에서 쌀 1kg이 약 5000원인데 버스비는 5원밖에 안 되니 차장이 없어도 차표를 잘 낼 수밖에 없다.
사실상 공짜 버스인데 버스 운전사들의 처지에서 보면 아무리 일해 봐야 남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배급을 제대로 주는 것도 아니고 월급도 있으나마나다.
결국 운전사들은 역이 아닌 곳에서 사람을 태워주거나 내려주고, 또 장사 물건을 옮겨주는 것으로 가외로 벌어 먹고산다. 평양 버스는 뒷문으로 탑승하는데 가다가 도로에서 손을 드는 사람을 앞문으로 태워주고 보통 1000원을 받는다. 이미 평양에는 교통보안원이나 단속대가 있는 곳을 피해 운전사와 시민들 사이에 무언의 약속이 이뤄진 노선별 탑승 장소도 다 정해져 있다. 1000원을 내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고 언제든 시간 맞춰 타고 내릴 수 있어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막차 시간인 오후 11시 이후 버스는 ‘아무 곳에서 세우고 타는 초대형 택시’로 변한다.
평양 사람들은 이런 버스를 ‘무궤도택시’ 또는 ‘궤도택시’라고 부른다.
전기로 운행되지 않는 다른 노선버스는 출퇴근시간에만 다닌다. 나머지 시간에는 합법적 택시와 장사 물건 운반 버스가 된다. 이들의 명분은 이렇게 돈을 벌어야 출퇴근시간에 뛸 수 있는 연료와 부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에서 줄 수 없는 것이라 통제도 못 한다.
평양에는 국영버스 외에 대중교통 노선을 따라 달리며 돈을 버는 기업 외화벌이용 ‘벌이차’도 많다. 보통 북에서 ‘롱구방’이라 불리는 미니버스다.
벌이차는 정전이나 혼잡으로 대중교통이 마비되는 시간을 노려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데 평양역에서 광복역까지 약 6km에 5000원을 받는다. 그래도 기본료가 2달러(북한 돈 약 1만7000원)에, 이후 1km에 0.5달러씩 오르는 택시보단 훨씬 싸다. 특히 시내 변두리로 향하는 노선에 벌이버스가 많은데 서평양∼낙랑 노선의 부흥역 앞, 지체되기로 악명 높은 선교∼만경대 노선의 역전백화점 앞에 벌이차가 제일 많다. 이 밖에 통일거리엔 ‘통통이’라고 불리는 중국식 삼륜 전동차가 근거리 운송의 최강자로 부상했다.
평양엔 시외버스터미널 역할을 하는 곳도 여러 군데다. 대표적으로 서성구역 ‘3대혁명전시관’ 앞 등에 가면 ‘몰이꾼’이라 불리는 호객꾼들이 저마다 자기 버스를 타고 가라고 사람들을 잡아끈다.
이렇게 평양의 교통체계는 자연발생적으로 시장화하고 있다.
평양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전기 문제와 국영 운전사에 대한 보상 현실화가 시급하다. 또 국영 교통체계를 보조하는 벌이차, 택시, 통통이도 더 많이 경쟁시켜야 한다. 버스는 중국에서 사와도 된다. 골동품 공장 몇 개를 겨우 가동하면서 아직도 제품을 국산화했느냐 안 했느냐를 따지고 있는 북한이 참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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