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66〉만날 쓰던 ‘맨날’의 뿌리를 찾아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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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익숙한 것이 어떤 것인지 자신의 말을 확인해 보자.

만날 그 모양이다.
맨날 그 모양이다.

①이 더 익숙한 사람들은 문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칭찬받을 만하다. ‘만날’은 한자 ‘일만 만(萬)’에 고유어 ‘날’이 붙은 말이다. 이 어원만을 고려한다면 ‘만날’이 올바른 표기다. 실제로 이전에는 ‘만날’만을 표준어로 삼았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는 확인해 봐야 할 일이다.

요새는 ‘맨날’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런 우리의 말소리를 반영하여 2011년, ‘맨날’도 표준어로 인정하게 됐다. 주목할 점은 ‘만날’과 ‘맨날’이 모두 표준어라는 점이다. ‘맨날’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 그 경향을 인정했다면 ‘만날’을 ‘맨날’로 대체하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 첫머리에 ‘맨’을 가진 단어를 떠올려 보자.

맨눈, 맨다리, 맨땅, 맨바닥, 맨발, 맨손, 맨주먹

새로운 말을 만드는 유용한 방식은 이미 있는 단어를 활용하는 것이다. 위 단어들은 원래 있던 말의 앞에 ‘맨-’을 붙여 새 단어를 만든 것들이다. ‘맨-’이 붙은 새 단어들에 공통적으로 어떤 의미가 생겼는지를 보자. 그 의미는 ‘다른 것이 없는’이라는 뜻이다. 언어학에서는 이렇게 다른 단어의 앞머리에 붙어 새 의미를 덧붙이는 형식을 ‘접두사’라 한다. 그냥 ‘말의 앞머리에 덧붙이는 말’이라 이해하면 된다.

‘맨-’이 갖는 일반적인 의미에 비춘다면 ‘맨날’은 정말 이상한 말이다. ‘맨날’의 ‘맨-’에는 접두사 ‘맨-’의 일반적 의미가 들어 있지 않으니까. 단어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그 관계를 표기에 제대로 반영하여야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맨날’의 ‘맨-’은 접두사 ‘맨-’이 갖는 의미적 질서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말의 ‘맨-’의 부류와 묶어서 규범을 지정할 근거는 없다. 2011년 이전에 ‘맨날’을 표준어로 삼기 어려웠던 것에는 이러한 사정이 들었다.

그렇다면 ‘만날’과 ‘맨날’을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게 된 현재에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먼저 ‘만날’부터 보자. 이 단어가 여전히 표준어라는 점은 ‘일만 만(萬)’에 고유어 명사 ‘날’이 붙어 만들어진 단어라는 어원적 인식이 유효함을 반영한다. 이 단어처럼 한자어에 고유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들은 의외로 많다. ‘문소리, 툇마루’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 단어들 중의 하나가 ‘만날’이다.

그러나 이제 ‘만날’의 동의어가 된 ‘맨날’은 ‘맨-’의 어원을 알 수 없는 단어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아주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이 단어를 순수 고유어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날’을 사용하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 동의어인 ‘맨날’에는 이미 ‘일만 만(萬)’의 의미가 없다. 의미적 연관성이 끊어진 지점에서 생기는 당연한 수순이다. 오늘날 아예 우리말화되어 한자어인지 인식되지 않는 다른 단어들처럼 말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만날#맨날#맞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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