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이 삼성 방문한다 하니 청와대에서 구걸하지 말라고 쿡 찔러요. (삼성이 대규모 투자·고용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 네가 가서 생색내지 말라는 거죠. 다 된 밥에 왜 달려드느냐.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밥그릇 숟가락 싸움입니다.”(‘황장수의 뉴스브리핑’)
“보수 세력이 이재명 지사를 절대악으로 만드는 데 상당 수준 성공했습니다. 이건 Divide and Rule(갈라치기)의 기초 중에 기초죠. 보수 진영의 최종 목표는 이 지사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실패입니다.”(‘김어준의 다스뵈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삼성전자 평택공장 방문을 두고 불거졌던 투자 구걸 논란,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관한 의혹들에 대해 유튜브에선 이렇게 독창적이나 근거 없는 논평들이 눈길을 끌었다. ‘황장수의 뉴스브리핑’은 구독자가 17만4000명, 팟캐스트에서 시작한 ‘다스뵈이다’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만 7만5000명이다. KBS와 MBC 메인뉴스의 시청률이 추락하는 사이 동영상 사이트에서는 구독자가 10만 명을 훌쩍 넘는 시사 분야의 인플루언서들이 맹활약 중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정곡을 찌르는 논객들이 드물게 있다. 하지만 대개 시사채널의 진행자들은 신생 교파를 이끄는 종교 지도자 같다. 선과 악이 분명한 세계관으로 현실을 해석한다. 복잡한 이슈들이 ‘모든 게 문재인 때문이고 믿을 건 미국뿐’이라거나 ‘이게 다 이명박근혜 탓이고 배후엔 미국이 있다’는 세계관을 통하면 단순명쾌해진다.
세계관은 달라도 ‘신도’를 모으는 비결은 같다. 주류 엘리트와 언론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들려준다. 극우 성향의 ‘뉴스타운TV’(구독자 13만4000명)는 고 노회찬 의원의 타살설, ‘신의한수’(18만 명)는 ‘문재인 치매설’을 제기한 뒤 “이럴 때일수록 애국 세력이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진보 성향인 ‘망치부인의 시사소설방’(아프리카TV 애청자 19만4000명)은 “기무사 계엄령 문건 덮으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석탄팔이(북한산 석탄 국내 반입 의혹 보도)한 것”이라고 했다. 실시간 댓글 창에 “그게 사실이냐”는 의심은 없다. “맞아요, 속을 수 없죠” “완전 사이다!” 같은 맞장구가 돌아간다. 어차피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믿음이니까.
문화비평가 커트 앤더슨은 미국 사회를 진단한 ‘판타지랜드’에서 탈진실(post-truth) 현상의 뿌리를 미국인들이 종교개혁의 의미를 ‘미국적으로’ 받아들인 데서 찾았다. 엘리트 사제를 통하지 않고도 성경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하는 대로 믿어도 되는 권리로 오해하는 바람에 현실 인식에까지 극단적 상대주의가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의 유튜브 저널리즘도 그렇다. 사람들은 이제 주류 언론이라는 ‘사제’ 없이도 누구나 뉴스를 만들고 해석할 수 있다. 메주로 콩을 쑨대도 인터넷 어디엔가는 믿어주는 동지가 있게 마련이다. 앤더슨은 “특정 환상의 전파력이 강해지면 다른 환상들까지 부추긴다. 그들이 저걸 믿는다면 우리는 이걸 믿어도 된다는 식의 뒤틀린 규칙이 만들어진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경우 진보 진영이 팟캐스트에서 일찌감치 교세를 확장했고, 보수 진영이 유튜브에서 열세를 만회하려는 형국이다.
진실이 가변적이고 개인적인 선호의 문제가 돼도 될까. 미국의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폭정(On Tyranny)’에서 “진실이 없다면 권력자를 비판할 수 없다. 비판할 근거가 없으니까”라며 “탈진실은 파시즘의 전조”라고 경고했다. 디지털시대 파시즘은 폭군이 아니라 판타지 저널리즘의 형상으로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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