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강○○ 군’ ‘51번 김○○ 양’처럼 출석번호를 남학생부터 매기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국가인권위원회가 9일 판단 내렸다. 올 초 서울 A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둔 엄마가 “출석번호가 여학생을 차별한다”고 이의를 제기한 결과다. 인권위는 “남학생에게 앞번호, 여학생에게 뒷번호를 부여하면 남성을 여성보다 우선시한다는 차별의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했다.
▷성차별적 관행을 개선하라는 권고를 받아든 A초교 교장은 다소 억울할 것 같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성차별을 한 것이 아니라 새 학년을 맞기 전에 4∼6학년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 전원에게 설문조사까지 해서 붙인 번호여서다. 학부모들은 ‘남녀 구분 없이 가나다순으로 정하자’는 응답(49.6%)이 많았던 반면에 정작 학생들은 ‘남학생 1번부터, 여학생 51번부터 하자’(53.9%)고 선택한 점도 흥미롭다.
▷이를 두고 인터넷상에선 갑론을박이 오갔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남자는 1·3번, 여자는 2·4번으로 시작하는 것도 성차별 아니냐, 가나다순으로 부여하면 ‘ㅎ’ 성을 가진 학생을 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14년 전엔 주민등록번호에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진정이 접수됐다. 인권위는 전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제도라 개별적인 사건으로 다룰 게 아니라는 취지로 각하했다. 사회 시스템 전반을 손질해야 하는 혼란을 우려했을 게다.
▷출석번호 같은 형식적인 성평등보다 실질적인 성평등이 중요한 시대다. 인권위가 인권 문제를 간과한 점도 아쉽다. 학생에게 번호를 매기는 관행 자체가 인권과 거리가 멀다.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선 학생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는 평균 22.3명이다. 학생들이 빽빽이 앉은 ‘콩나물 교실’이라 이름 외우기 힘든 시절이 아니다. 번호로 불리면서 교련 수업을 받던 시절도 아니다. 굳이 출석번호를 매기는 것이 교사들의 편의 때문은 아닌지 의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여 가나다순 출석번호를 권고한다고 한다. 이참에 출석번호를 없애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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