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수박에 관한 추억이 있겠지만 나는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밤에 모여 수박 서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라 항상 굶주렸던 우리들은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철조망의 벌어진 틈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 우리 몸통보다 큰 수박을 들고 나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원두막 기둥에 항상 묶여 있는 줄만 알았던 개가 쫓아와 일행 중 가장 어린 친구의 엉덩이를 물었다. 피를 흘리며 병원에 실려 가고 그 일로 전교생 앞에서 다시는 서리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후 마무리됐다. 나는 마음속으로 개가 풀어져 있을 때는 서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고, 서리는 다시 되풀이됐다. 내가 정말 서리를 그만둔 계기는 어머니가 내가 다시 서리하면 “부끄러워 내가 너 대신 죽을 것이다”라는 협박을 했기 때문이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이고 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이지만 식용 여부로 구분한다면 야채에 가깝다. 2007년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는 수박을 야채로 분류했지만 과일, 야채의 구분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동그란 수박이 주사위처럼 정사각형 모양으로 생산되고 있다. 정사각형 수박을 처음 만든 계기는 일본 가정의 작은 냉장고에 쉽게 저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수박이 자랄 때 투명 플라스틱 박스를 씌워 정사각형 형태를 만들었고, 삼각형이나 하트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가격은 일반 수박의 10배 정도 비싸고 대부분 병문안, 선물 등의 용도로 사용된다. 맛보다는 장식용에 가까워 완전히 익기 전 형태만 갖춰지면 판매된다. 수박은 수확 즉시 모든 성장 과정을 멈춘다. 상인들은 소리로 잘 익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수박의 초록색 줄이 진할수록 달다. 꼭지는 파랗고 신선해야 하며 약간 패인 듯 움푹 들어간 것이 달다. 꽃이 떨어진 배꼽같이 생긴 부분은 원형이 넓어야 달다. 수박은 딱딱한 표피를 제외하고 통째로 먹을 수 있다. 흰 부분도 피클이나 조림, 국으로 요리하면 마치 동과(호박의 일종)처럼 부드럽고 깨끗한 맛이 난다. 중국에서는 수박씨를 해바라기씨처럼 볶아 먹는다. 여기에서는 씨 부분이 크게 자라도록 교배한 종을 사용한다. 레스토랑에서도 수박은 매우 다양하게 쓰인다. 셔벗과 스무디, 샐러드, 토마토, 페타치즈를 곁들어 판차넬라 샐러드를 만들면 치즈의 짭조름한 맛과 수박의 달콤함이 잘 어울려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여름철 샐러드가 된다. 잘 익은 수박 한 조각을 구운 후 100년 된 발사믹 식초 한두 방울을 곁들어 내는 최고급 식당의 디저트 메뉴도 있다.
어릴 때 수박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모이고 이 집 저 집 돌아가며 제공하는 수박을 먹으며 여름밤을 보냈다. 요즘처럼 큰 냉장고도 없었고 조각낸 수박도 팔지 않았다. 며칠 전 마트에서 조각낸 수박을 고르다 옆에서 큰 수박을 사는 어느 모녀를 보게 됐다. 그들은 수박에 대한 어떤 추억을 남길 것인지 갑자기 무척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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