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방문하다 보면 유독 눈에 많이 뜨이는 조형물 중 하나가 길거리 등에 세워진 영웅동상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는 사거리마다 만든 로터리 중간에 어김없이 동상이 서 있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인물의 동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의 동상도 꽤 눈에 띈다. 예를 들면 18세기 외교장관이나 총리의 동상이 그렇다. 당시 민중을 위해 커다란 기여를 했음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세웠을 것이다. 당시 시대정신에 부합한 영웅인 것이다.
영웅은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거나 자신을 희생하고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이다. 흔히 영웅이라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세종대왕, 이순신,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이다. 그러나 영웅의 모습이나 기준이 외국처럼 잘 표현되어 있지 않다. 유감이다. 물론 세종대왕상이나 이순신 동상은 좋은 귀감이 되고 국가적 영웅으로 두루 존중받고 있으니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떤 인물은 당시대의 이념이나 통치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동상 건립이 거부되거나 기념사업회가 정치적 이유로 배척당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역사 허물기 작업을 그만두고 영웅 만들기 작업을 하면 어떨까. 우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한민족 한 국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소영웅들이 있었을까. 더 이상 현존하는 영웅들의 폐기 작업은 그만두고 새로운 영웅 발굴 작업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끝내 왜적을 물리치고 조선을 지배하려던 명나라 군대마저 빈손으로 돌아가게 한 지도자다. 그러나 그런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기념관이나 동상은 어디에 가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사상이나 철학은 심지어 역사교과서에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소영웅 발굴은 고사하고 큰 영웅을 기리는 사업마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애 후손들이 자랑하는 하회마을이나 선생이 세운 병산서원에도 서애 동상 하나 세워지지 않은 현장에 바로 우리 사회의 영웅 만들기 인색함이 드러나 있다.
영웅이라고 해서 모든 점에서 완벽한 인간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일에서 영웅적 역할을 했으면 그것으로 그 역할을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조금만 너그럽게 하면 우리도 많은 영웅을 선정해 마을마다 영웅을 모시고 동상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동시대인이나 후손들이 롤모델로 삼을 영웅을 더 많이 만나게 되고 역사교과서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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