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리콜 대상이면서 아직 긴급 안전진단을 받지 못한 BMW 차량에 대해 운행중지를 요청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게다가 운행중지 대상이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인 BMW여서 더욱 충격적이다.
아직 안전진단을 받지 못한 2만여 대의 차주 불만이 눈에 선하다. 불탄 BMW 차량 소유주 마음도 시꺼멓게 탔을 것이다.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원인 제공은 분명 BMW가 했다. 차량 결함으로 인해 올해 들어 39대의 BMW 차량이 불탔다. 운전자 부주의로 인한 화재까지 합치면 80대가 넘는다. 인터넷상에서는 지난해 현대자동차 화재 건수(2327건, 운전자 부주의 화재 포함·이하 동일)를 언급하며 언론이 유독 BMW만 가지고 문제 삼는다는 음모론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국내에 돌아다니는 현대차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 측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등록 차량 1만 대 중 1.18대꼴로 불탔다. 기아자동차는 0.69대다. 하지만 BMW는 1.5대로 훨씬 많다. 이 숫자는 승용차와 화물자동차 화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승용차 기준으로 한정한다면 BMW 화재 비율은 국산차보다 2배 이상 높을 것이다. BMW 화재 건수가 2016년(65건) 이후 급격히 늘고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지난해에는 94건이었고, 올해는 8월 현재 80건을 넘었다.
BMW 측은 사태 수습을 위한 골든타임도 놓쳤다. 동아일보는 7월 17일에 불타는 BMW를 처음 보도했다. 주행하던 BMW 520d에서 불이 났는데, 올해 들어 동일 모델에서만 5번째 화재였다고 사회면에 기사화했다. 당시 BMW코리아 측은 “정확한 화재 원인이 파악되지 않았다”며 별문제 없다는 투로 대응했다. 그 시점에 BMW가 독일 본사의 전문가들을 불러 기자회견을 열었으면 어땠을까. 참고로 독일 BMW 본사 품질관리부문 수석부사장 등 현지 전문가들이 방한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문제점을 인정한 때는 이달 6일이었다.
정확하게 문제점을 분석하지 못했다는 점도 사태를 키웠다. BMW 측은 왜 한국에서만 EGR 문제로 인한 화재가 집중되는지, 동일 제품을 장착한 현대·기아차는 왜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지 등 의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심지어 BMW코리아가 긴급 실시한 안전진단에서 ‘이상 없음’으로 판정된 BMW 차량에서도 불이 났고, EGR 문제로 인한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에서도 불이 나고 있다. 현재는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암담한 상태다.
그동안 BMW,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등 독일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차량일 뿐 아니라 하차감(차에서 내릴 때 주위에서 던지는 부러운 시선에 대한 느낌)까지 확실했다. 그렇기에 BMW 측이 한국 소비자를 상당히 만만하게 봤을 것이다.
더 근원적으로는 독일의 제조 신화에 금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일본차와 한국차가 선전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기술 평준화, 그로 인한 독일차의 기술 리더십 쇠퇴, 미래차 시장을 잡기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비 급증…. 이러한 내외부 환경들에 독일차 제조사들이 조급증을 내면서 독일 특유의 제조 철학이 무뎌지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3년 전 터졌던 폴크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사태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상태여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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