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열풍을 몰고 온 채널A 예능프로그램 ‘도시어부’가 얼마 전 독도로 출조를 나갔다. 이곳에서 이경규는 ‘노(No)’ 입질의 수모를 당했고 이덕화도 잡어만 잡았다. 마이크로닷만 길이가 126cm인 부시리를 잡았다. 같은 배에 탔지만 누구는 월척을 잡고 누구는 투척만 할 뿐.
낚시에 문외한이지만 ‘도시어부’를 즐겨 본다. 낚시를 카메라로 물고기를 사진으로 바꾸고 둘 사이의 닮은 점을 찾다 보면 보는 재미는 두 배다. ‘이놈의 직업병이란….’ 발품 팔아 목적지에 도착해야 사진이 있고 물고기도 있다. 현장에 가야 답이 있고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 가끔 출연자들이 낚싯대 자랑을 하는데, 카메라도 ‘장비발’을 무시할 수가 없다는 점, 둘 다 ‘기다림의 미학’이 작용한다는 점도 그렇다.
고기 떼의 흐름에 맞춰 배를 정박시켜야 하듯, 취재 현장도 상황에 따라 베스트 포인트가 바뀐다. 자리가 반을 차지한다는 것. 이런 유사성 중에서 가장 달콤하면서도 민감한 요소가 있는데, 강태공과 사진기자가 한목소리로 이것을 ‘운발’이라고 한다. 최근 벌어진 보물선 해프닝도 손쉽게 잡을 것 같은 ‘운’에 대해 남들에게 뒤처질 수 없다는 집단투기현상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본다. 월척과 특종도 ‘운발’이었다고 말해야 하나?
낚시를 잘 몰라 배낚시가 취미인 지인에게 자문했다. 바닷속 물고기는 미끼를 무는 데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입질까지는 ‘운’이 작용한다. 입질이 왔을 때 프로는 미끼를 어느 정도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초보는 입질이 오면 섣부른 챔질을 해 낚싯바늘이 등이나 꼬리에 걸린다. 바늘이 아가미에 걸릴 때까지 기다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프로와 아마가 나뉜다. 실력이 없다면 운도 없다.
사진도 운을 포착하는 준비된 기술이 있어야 한다. 1000분의 1초를 다투는 기록경기에서 셔터찬스를 잡는 것은 노련한 경험과 카메라 조작이 숙달된 실력에서 나온다. 낚싯대를 들어올려야 시퍼런 바다에서 뭐가 나오는지 알 수 있듯이, 포토저널리즘이란 장르도 돌발 상황을 전제로 한다. 현대 포토저널리즘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사진집을 보면 순간 묘사의 절묘함이 느껴진다. 특히 프레임 안에 ‘화룡점정’의 요소는 대부분 우연히 등장한 행인들이 만든다.
여기 실린 ‘우중문안(雨中問安)’이라는 제목의 사진으로 제48회 한국보도사진전 피처(feature)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진을 찍은 2011년은 올해와 달리 비가 많이 내렸다. 촬영 당시 광화문 지하광장에도 장대비가 왔다. 비에 주변 풍경은 사라지고 세종대왕상이 마치 공중부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 사람이 한 명만 지나가면 멋진 사진이 나올 텐데.’ 바로 그때 무지개우산을 든 여성이 동상 근처로 다가갔다. 순간 나도 모르게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셔터를 눌렀다. 이 여성이 없었다면 사진은 평범함 그 자체다. 우산이 검은색이었거나 비와 분간이 안 가는 흰 것이었어도 특징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행운의 무지개 여신’을 찾기 위해 이곳에 가는데 7년이 지나도록 그때보다 만족할 만한 사진을 못 찍는다. 더 이상 운이 작용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면 될 때가 있어요. 안 될 땐 최선을 다해도 안 돼요. 최선을 다 안 하면 또 잘 안 돼. 건성건성 해도 될 때가 있어요.” 아무것도 낚지 못한 이경규가 그날 방송에서 푸념 섞인 말을 했는데 명언이다. 방송 자막에는 “오늘의 교훈 ‘진인사대천명’(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이라는 말이 떴다. 내가 아직 갈 길이 먼 사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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