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의 공인중개사 대표 A 씨는 지난주 뜻밖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대전에 산다는 사람이 불쑥 전화해 “4억 원대 아파트 매물이 있으면 무조건 살 테니 집주인을 붙잡아 달라”고 주문했다.
한강은 보이는지, 몇 년 된 아파트인지 하는 조건은 묻지도 않았다. A 씨는 “‘묻지 마 투자’는 서울 강남 아파트를 대상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그것도 옛날 얘기”라며 “서울 전 지역이 추격 매수 대상이 된 느낌”이라고 혀를 찼다.
올여름 주택시장의 ‘서울 쏠림’ 현상은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보다 더 뜨겁다. 한동안 잠잠하던 서울 주택 가격은 이제 확연한 오름세로 바뀌었다. 13일 기준 5주 연속 가격 오름폭이 뛰었다. 가격 상승의 ‘진앙’인 용산구, 영등포구에 이어 마포구 강서구 등 인근 지역까지 덩달아 오르는 형국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울 아파트를 사겠다는 대전 주민의 생각은 합리적일까. 지난 5년의 통계만 되짚어 보면 합당하다. 올해 서울 아파트 값이 4.71% 오르는 사이 대전은 0.25% 올랐다.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은 2014년 이후 누적으로 23.53%(한국감정원 기준) 올랐다. 대전은 같은 기간 1.58% 올랐다. 이런 상황이니 “(더 늦기 전에) 내가 가진 4억 원으로 아무 서울 아파트나 사 달라”는 지방 사람의 이야기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정부가 서울 주택 가격이 뛰고 지방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을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집값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 보유세를 올리고, 임대주택으로 묶어 팔지 못하게 했고, 양도소득세를 높여 거래를 힘들게 했다.
그 결과 서울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은 꿈쩍 않고 매매가 상승세만 쳐다보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는 최근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집주인들에게 “지난주보다 5000만 원 더 주겠다”며 매각 의사가 있는지 묻는 문자를 보낸다. 그래도 매물은 나오지 않는다. 거래는 끊기고 호가는 천정부지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부동산 세율을 얼마로 하겠다는 시시콜콜한 대책이 아니라 정책의 방향성이다. 정부가 말하는 ‘안정’이 주택 가격을 크게 낮추겠다는 것인지(경착륙), 서서히 떨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인지(연착륙), 물가 상승분만큼의 제한적 가격 상승을 뜻하는 것인지 시장이 알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 내에서도 이를 언급하는 사람이 없다.
목표가 확실치 않아서인지, 정권 초기에는 역대 최고 수준의 규제를 내놓다 지난달 부동산 보유세 개편 방안에서는 “별거 아니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뒤로 물러섰다. 정책이 냉·온탕을 오가니 펀더멘털이 취약한 지방 주택시장은 빈사 상태가 됐고, 규제 내성이 생긴 서울은 다시 출렁인다.
지금은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목표와 전략을 다시 짤 때다. 과거 사례를 보면 지방의 돈이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하면 집값을 잡는 것이 더욱 요원해진다. 지금 서울 집값을 못 잡으면, 그때는 부동산이 정권을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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