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서울시장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중 하나인 서울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 입주했습니다. 현장 정치, ‘보여주기 정치’라는 비판과 ‘노력한다’는 칭찬이 뒤섞여 나옵니다. 현장 정치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았습니다. 》
▼ 옥탑방 사랑방 ▼
“방학이기도 하고 혹시나 박원순 시장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인터넷 보고 찾아왔어요. 인사도 하고 사인도 받고 싶었는데 안 계시네요. 미양중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사인을 받았대요. 처음 뉴스를 봤을 땐 깜짝 놀랐어요. 이제 곧 한 달이 되는데 단순한 ‘서민 체험’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요.”―박진우·윤준서·주민상·허민 군(14·삼각산중학교 2학년)
“경기 수원에서 2시간 걸려 찾아왔습니다. 뉴스를 보니 사람들이 평상에 모여 박 시장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더라고요. 정말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인지 궁금해 찾아갔죠. 제가 갔을 때는 비서로 보이는 남성이 한 아주머니와 함께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신혜선 씨(25·대학생)
“서울시장을 길에서 보니 참 신기합니다. 옥탑방 골목은 각양각생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랑방이 따로 없습니다. 문을 연 지 40년 된 삼양동 ‘서울사진관’ 주인은 삼양 사거리에서 박 시장을 만나 함께 사진 찍고 친필 사인도 받았답니다. 사진관에 가면 볼 수 있어요.”―이모 씨(50대·서울 강북구 삼양동 주민)
▼ 반쪽짜리 체험 ▼
“서울시장 3선으로 만 7년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강북 시민의 삶을, 주거 취약계층의 현실을 모르나요? 서울 전체에서 1등한 학생이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한 후 3학년이 돼서야 덧셈뺄셈을 배우는 격입니다. 나중에 미적분은 할 수 있으려나요.”―이승찬 씨(23·대학생)
“반쪽짜리 체험이에요. 밤늦게 또는 사진 찍을 때나 옥탑방에 옵니다. 굳이 왜 여기서 사나 싶습니다. 삼양동 동장이 옥탑방에 자주 드나든다고 들었어요. 비서진들이 옥상에 물 뿌리며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짠하기도 하고요. 시장이 왔다고 옥탑방 앞 가로등이 바뀌고 폐쇄회로(CC)TV가 달렸습니다. 그런데 가로등이 너무 밝아서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잠자는 데 불편하다고 해요.”―홍모 씨(40대·삼양동 주민·회사원)
“솔샘역 부근에서 한 번 봤습니다. 비서진 대동해서 주민들과 악수하는 모습이 꼭 선거 유세하러 온 사람 같더군요. 취사시설 없는 옥탑방에서 사는데 무슨 수로 강북 주민의 삶을, 서민의 삶을 알겠습니까.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고 노회찬 의원은 젊은 시절 노동 운동을 하기 위해 직접 용접 기술을 배워 용접공으로 공장에 취직했어요. 그게 진짜 삶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김모 씨(63·삼양동 주민)
“아침저녁으로 데모하는 차와 구경 온 사람들로 골목이 붐벼서 불편합니다. 주말 밤에는 새까만 큰 차가 골목에 들어오더니 정장 입은 사람들이 내렸어요. 박 시장을 만나러 왔더군요. 골목 초입에 내려서 걸어 올라가면 좋을 텐데 꼭 매연 뿜으며 찾아오네요. 골목 바로 옆이 현관문인 집도 있는데 말예요.”―이모 씨(60대·삼양동 주민)
“우리가 사는 동네를 ‘가난한 곳’으로 만든 걸로 보여요. 말이 민생체험이지 ‘못 사는 곳에 가서 살아보겠다’는 거잖아요”―정모 군(10대·중학생)
▼ 시장에서 만난 서울시장 ▼
“박 시장이 솔샘시장에 와보곤 천막을 설치해 주기로 했어요. 구청에선 곧바로 오래된 아스팔트 바닥을 정비하기로 했죠. 비가 오면 시장 바닥에 물이 차고 우산끼리 부딪혀 난리가 납니다. 시장이 직접 와서 상인들의 애로사항을 들으니 해결 방안이 빠르게 나오잖아요. 비서관이 가게에 와서 떡도 사갔어요. 다음엔 박 시장과 함께 찾아오기로 약속했답니다. 뭐든지 겪어봐야 알 수 있어요.”―서정선 씨(56·서울 강북구 솔샘시장 상인)
“시장이 직접 시민들을 만나러 온다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입니까. 시청에 민원을 넣어도 시장에게 보고되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박 시장이 아침에 골목 청소도 하고 주민들과 담소도 나누니 무더위에 찾아온 소나기 맞은 듯 속이 시원합니다. 정치 이념을 떠나 잘한 건 잘했다고 해야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청계천 정비하고 대중교통 환승 제도를 만들어 시민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했죠. 박 시장이 계속 솔선수범하길 기대해요.”―이희숙 씨(63·삼양동 주민)
“큰 거 필요 없어요. 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사소한 부분을 신경 써주면 좋겠습니다. 동물병원 옆 골목에 가로등이 없어요. 건물 짓는다고 없애더니 완공 후에도 다시 세우지 않더라고요. 밤에 다니기 위험합니다. 계단도 높아 눈이나 비만 오면 사람들이 미끄러집니다. 박 시장이 무더운 날에 와서 땀 뻘뻘 흘리며 살았잖아요. 주민들의 고충을 듣고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고생한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이순자 씨(71·삼양동 주민)
▼ 중요한 건 정책 ▼
“옥탑방 한 달살이가 끝난 후 ‘어떤 정책을 내놓는지’가 중요합니다. 직접 살아보며 더위, 교통 등의 생활 문제를 느꼈을 겁니다. 서류로 전달받는 것보다 실제로 겪었을 때 더 의미 있는 정책을 세울 수 있겠죠. 체험에서 멈추느냐, 진정성 담긴 노력이 되느냐는 앞으로의 정책을 통해 시민들이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체험에 상응하는 정책을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서울의 대학 기숙사 수용률은 15%에 불과해요. 1년에 수만 명의 대학생이 기숙사 신청에 떨어져 살 곳을 구해야 하죠. 이외에도 3선인 박 시장이 열악한 강북의 주거 문제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 직접 동네에 사는 것보다 시민의 목소리가 시정에 잘 반영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합니다. 체험을 통해 얻은 정책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표를 의식해 추진하지 못한다면 보여주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옛날 암행어사가 고을고을 다니며 민생을 살폈듯 정치인도 체험을 통해 국민의 삶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치인들의 ‘서민 코스프레’를 야비한 행동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봐요. 다만 ‘흉내 내기’에 그치지 않도록, 경험해본 만큼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들어야죠.”―호영희 씨(52·음식점 운영)
▼ 이곳에도 찾아오세요! ▼
“제조업 생산 현장은 52시간 근무제를 비롯해 다양한 노동·경제 정책에 즉각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정작 정책을 만들 때 ‘현장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가득한 사무실 안에선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이 생산 현장에 직접 와서 현장을 보고, 근로자의 이야기를 듣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세우면 좋겠습니다.”―김영한 씨(54·제조업 종사)
“요양병원엔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가 대다수예요. 올해는 유난히 날이 더워 욕창과 종기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 30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줬죠. 점심 먹을 여유도 없이 뛰어 다녀요. 정치인들이 보건직종 근로 환경을 직접 눈으로 봐야 합니다.”―박희자 씨(62·요양병원 근무)
“쪽방은 옥탑방보다 더 열악합니다. 쪽방에서 지내는 어르신들 보면 눈물이 납니다. 열사병 걸리는 날씨에 골목 뒤져 폐지 모아 번 돈으로 밥도 사드시고 하루 7000원 하는 방값도 내세요. 정치인들이 선풍기 없이 여름에, 보일러 없이 겨울에 쪽방에서 살아보면 좋겠어요.”―안모 씨(57·고물상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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