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脫권위 청와대의 권위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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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향한 장관의 90도 인사… ‘충성맹세’ 연상, 보는 사람 더 창피
靑 권위주의, 내각 여당과 관계 왜곡… 참모들부터 경계하고 忠言해야
제자리 맞는 사회적 권위 필요하나… 권위주의 변질되면 미래로 못 나아가

박제균 논설실장
박제균 논설실장
동아일보에 수습기자로 입사했을 때 선배들로부터 받은 교육이다. “부장 차장을 부를 때 ‘님’ 자를 붙이지 마라. 성을 앞세워 ‘김 부장’으로 부르거나 아니면 ‘부장’이라고 해라.” 입이 잘 안 떨어졌다. 당시 부장은 나보다 스무 살쯤 나이가 많았다. ‘부장’ 하고 부른 뒤 소리를 죽여 뒤에 ‘님’ 자를 붙이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처음엔 왜 굳이 반말 같은 호칭을 해야 하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지금부터 30년쯤 전의 일이란 점을 감안하길 바란다. 그러나 취재현장에 나가면서 그런 호칭에도 나름의 ‘깊은 뜻’이 있음을 알게 됐다. ‘님’ 자 하나 뺀 것뿐인데, 격의 없는 내부 소통을 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당시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보다 수평적인 언론사 문화가 나이 많고, 성공한 취재원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다가가는 데 큰 힘이 됐던 게 사실이다. 호칭이나 예절 같은 형식은 때론 인간관계라는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님’ 자는 고사하고 부장 차장이란 직책까지 생략한 호칭이 등장하는, 이른바 탈(脫)권위 시대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 대통령이 청와대 관계자들과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산책하며 담소하는 사진으로 탈권위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탈권위 정부에도 권위주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0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허리가 꺾어지듯 90도 ‘폴더 인사’를 했다. 이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적지 않은 의혹이 쏟아졌음에도 ‘의원 불패’ 신화에 힘입어 통과했다. 그 안도감에 엔도르핀이 분출하는 터에 ‘가문의 영광’이 되는 자리에 발탁해준 대통령에게 임명장까지 받으니 절로 충성심이 솟구쳤을 법하다.

장관의 90도 인사에 청와대 참모들은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불편하고 씁쓸했다. 장관이 대통령에게 충분한 예의를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장관은 주군(主君)과 가신(家臣)의 관계가 아니며 장관이 궁극적으로 충성해야 하는 대상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조폭의 충성맹세를 연상케 하는, 예법에도 없는 90도 인사를 보면서 아직도 우리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진정한 청와대 참모들이면 그런 시대착오적인 인사가 대통령의 이미지에 미칠 악영향을 경계하고 충언을 했어야 한다.

지난달 인도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서 문 대통령을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90도 인사를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삼성을 겨냥한 정권의 압박이 조여 가는 터에 젊은 총수가 연장자 대통령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깊이 머리를 숙이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런 게 당연시되는 문화는 곤란하다. 현 정권을 포함해 우리의 역대 정권은 집권 초 정부와 기업을 수직적 관계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정부와 기업은 상하관계가 아니다. 경제의 동반자인 수평관계다.

비단 정권만의 문제도 아니다. 어떤 정치인들은 당 대표가 됐다고, 혹은 원내대표가 됐다고 신임 인사 자리에서 ‘앞으로 잘 모시겠다’며 90도 인사를 한다. 그리고 잘 모시기는커녕 도리어 무시하고 극한 대립을 자행해온 것이 우리 정치판의 현실이다.

악수란 원래 꼿꼿이 서서 눈을 맞추며 하는 것이 예법에 맞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똑바로 서서 악수해 ‘꼿꼿 장수’ 별명을 얻었지만, 실은 그렇게 안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다. 정, 어른에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악수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목례 정도는 무방할 터다.

아무리 탈권위를 외쳐도 의식 깊은 곳에 자리한 권위주의까지 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청와대부터 뿌리 깊은 권위주의를 내치지 않는다면 청와대와 내각,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는 정상화될 수 없다. 국회와 정부, 정부와 민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규제혁파가 이토록 어려운 것도 ‘관(官)이 정하면 민(民)은 따르라’는, 관료들의 뼛속에 새겨진 관존민비(官尊民卑) 의식을 긁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권위마저 무시되는 요즘이다. 사회 구성원과 기관 각각의 자리에 맞는 권위는 필요하고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권위가 변질된 권위주의가 숙변처럼 들어차 있는 한 미래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이개호#문재인#청와대#권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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