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반기보고서에 5억 원 이상을 받는 금융권 고액 연봉자 명단이 공개됐다. 세간의 관심은 김연추 한국투자증권 차장에게 쏠렸다. 김 차장은 상반기(1∼6월)에만 22억2000만 원을 받아 같은 회사 최고경영자(CEO) 유상호 사장, 오너 김남구 부회장보다 연봉이 많았다.
금융위원회가 고액 연봉자 공시를 결정한 건 금융회사 임원의 보수가 성과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금융회사들이 성과급을 1년에 한두 차례 몰아서 주는 관행도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번 공시를 보면 김 차장뿐만 아니라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등 다른 증권사에도 5억 원이 넘는 고액 연봉자가 적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이번에 공개된 금융회사 임직원들의 연봉 수준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연봉 20억 원? 별로 많지 않은 거 같은데요.”
금융당국 관계자 A 씨의 말은 비판적인 반응을 예상했던 기자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다른 당국자와 금융권 종사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회사와 종업원이 성과급 체계에 합의했고, 그 기준에 맞는 성과를 냈고, 회사가 이를 지급했다면 이를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당국자 A 씨는 “외국계 증권사였다면 더 많은 연봉을 받았을 것이다. 문제 삼거나 조사할 여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도 불구하고 고액 연봉을 받는 당사자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고액 연봉자들은 대체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과도한 관심 때문에 대외 활동이 어려워지고 심지어 일부에서는 위협을 느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를 뒤집어 해석하면 한국 사회에서 ‘성과에 따른 보상’이라는 기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이 일하는 것보다 적게 받는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한국 근로자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근로자들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다. 한국 경제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금융권 등 대기업보다 낮은 중소기업의 연봉, 어려운 경영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고액 연봉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는 ‘일한 만큼 받는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성과가 좋다면 직원이 사장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기도 한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 전반에서 성과에 따른 보수 체계가 정착되지 않아서 생기는 논란”이라고 지적했다. 성과에 따라 정당하게 보상받는 것은 자본주의의 핵심 원칙 중 하나다. 고액 연봉자를 향한 질시보다 이들의 성과를 존중해주는 문화가 금융권을 넘어 사회 전반에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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