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로 만든 고등교육재단… 박사 747명에 장학금 혜택
농장에 선발 유학생 초대해 고기 굽고 축구하던 소탈함
최고의 명연설로 꼽히는 스티브 잡스의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는 ‘점들을 연결하기(Connecting the Dots)’라는 제목이 붙었다. 연설의 핵심은 인생이란 개인이 찍은 여러 종류의 경험의 점들이 연결되면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그 예로 제시한다. 그는 자신이 매킨토시 컴퓨터의 서체를 발명할 때 대학 중퇴 후 청강한 서예학(calligraphy)이라는 과목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잡스는 매킨토시 컴퓨터의 폰트 넓이를 비율적으로 조절해 매우 아름다운 서체를 개발했는데, 서예학을 접한 경험의 점이 폰트 개발이라는 경험의 점에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올해로 서거 20주기를 맞는 최종현 회장을 추모하면서 다소 엉뚱하고 장황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최 회장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찍을 수 없는 다양하고도 커다란 점을 찍을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난했던 한국 젊은이들은 학문에 대한 꿈이 있어도, 자신의 힘으로 유학을 갈 길이 없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선진국의 학문과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점들을 찍을 수 있게 해 줬다.
필자도 유학과 교수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다양한 점을 찍고, 또 이 점들을 연결해서 현재 대학 총장이라는 직책까지 이를 수 있게 됐다. 최 회장이 사재를 들여 만든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장학금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숫자가 올해로 747명에 이르고, 각자 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출중한 리더로 성장하여 나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최 회장의 인재 양성에 대한 의지가 만든 결과다. 당시 유학생 1년 치 학비는 몇 년 치 회사원 연봉에 달할 만큼 거액이었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한 것이다.
최 회장은 고등교육재단에서 뽑은 해외 유학생을 만나는 일을 가장 즐거워했다. 그 바쁜 틈을 쪼개 장학생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저녁을 함께하며 일일이 학생의 계획과 꿈을 묻기도 하고, 자신의 이천 농장으로 불러 멧돼지 고기를 구워 먹으며 축구를 즐기기도 했다. 장학생들과 야유회 가는 길에 최 회장은 자신의 승용차를 마다하고 언제나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그의 소탈한 너털웃음과 입담은 요새 말로 인기 ‘짱’이었다. 최 회장이 학생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그가 해외 출장을 가서도 만사 제쳐 놓고 현지 유학생들을 불러 모아 저녁을 사주면서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일일이 물어보고 위로하곤 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어쩌다 경제이론에 관련된 논쟁이 붙으면, 그는 매서운 논객으로 한 발짝도 물러남 없이 학생들의 최신 이론과 맞섰다.
최 회장의 경영철학에 잘 드러나 있지만, 인간과 나무는 공통점이 많다고 종종 말했다. 모두 서서히 자라며, 가꿀수록 성장하기 때문에 긴 시간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아무리 숨은 능력이 있는 인재라도 물이 없으면 못 자라는 나무와 같고, 가꿀수록 더 풍성한 숲으로 변해간다는 지론을 이야기했다. 그래서인지 최 회장은 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던 즈음 산에 밤나무 묘목을 많이 심었다.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고등교육재단 홈커밍 데이인 10월 3일에는 그 밤나무 숲에서 수확한 맛난 밤을 참석자들에게 한 상자씩 선물로 준다. 인재가 결실을 맺듯, 밤나무도 열매를 맺는 세월이 흐른 것이다.
어린 인재와 묘목의 공통점을 깨달아서인지 최 회장이 출국 인사를 하는 학생들에게 “마음에 씨앗을 심어라”라고 당부하던 것을 필자는 기억한다. “비전과 꿈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최 회장은 학생들이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단지 씨앗 한 톨을 뿌리기를 원했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필자는 마음속 씨앗의 신비함을 깨닫는다. 물을 주고 가꿀 때도 자라지만, 길을 잃고 방황할 때도, 나태할 때도 자라난다는 신비함이다. 그래서 필자는 최 회장의 씨앗의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한다. 필자가 그랬듯이, 학생들은 자신이 평생 지향할 방향을 설정한다.
최종현 회장이 인재 육성을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면, 부친의 뜻을 이어받은 최태원 회장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최태원 회장이 내세우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슬로건도 대단히 혁신적이다. 인간의 얼굴을 갖춘 따뜻한 자본주의를 향한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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