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서혜림]‘잡초 에어컨’으로 버틴 올여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4일 03시 00분


서혜림 청년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 운영
서혜림 청년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 운영
귀촌 여름 3년 차. 에어컨 없이 지내고 있다. 마당이 흙이고 뒷마당은 대나무가 있는 진짜 옛날식 농가주택을 개조해서 살고 있다. 다들 이 더위에 어떻게 사느냐고 궁금해한다. 그러나 가혹한 폭염이 찾아온 올해보다 귀촌 첫해가 더 더웠다. 원래 이 집은 전통가옥 구조로 앞뒤로 문이 있어서 자연대류가 일어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무식했던 귀촌 첫해, 집을 고치면서 뒷문을 모두 막아버리고 단열벽 처리를 하니 자연대류가 일어나지 않아 견딜 수 없이 더웠다. 워낙 더위를 타지 않는 초강력 여름 체질인 나도 집에 들어가기 무서울 정도였다. 처음 겪어보는 에어컨 없는 열기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기록적인 폭염이었던 올해는 오히려 견딜 만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보통 시골집의 앞마당은 생흙을 두거나 시멘트로 포장을 하니 태양의 열을 머금는 뜨거운 쪽이다. 그리고 대나무 뒤뜰은 식물의 그늘과 수분 방출 효과로 인해 언제나 시원한 쪽이다. 뜨거운 쪽 공기가 올라가면서, 시원한 쪽 공기를 집으로 끌어들여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는 원리다. 그러나 우리 집은 뒤뜰 쪽 창을 막아두어 더운 쪽 열기만 영향을 받고 시원한 공기를 받아들일 통로가 막혀 있는 탓에 더워서 살 수 없는 집이 된 것이다. 뒤뜰 쪽을 다시 뚫을 수는 없어서, 앞마당 잡초를 방치해 보았더니 덥기는 해도 다시 견딜 만한 집이 되었다. 작년까지는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가 느껴지던 앞마당이 올해는 오히려 시원한 공간이 된 것이다. 생각지 못했던 잡초 쿨링 효과는 매우 커서 열대야 없는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폭염 속, 오래간만에 서울에 출장을 다녀오며 깜짝 놀란 부분이 있었다. 늦은 저녁인데도 건물과 아스팔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론상 알고는 있었지만 시골에 살다보면 잊히는 느낌이라 생경했다.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고,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생태적인 삶이라거나, 환경 보존 같은 주제를 제쳐두더라도 시골에 살며 인간에게 쾌적한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도시 전체를 녹지화할 수는 없더라도 열기를 뿜어내는 벽이 아니라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벽으로 건물을 지으면 어떨까. 아스팔트를 모조리 잔디로 만들 수는 없더라도 도심의 녹지를 조금 더 늘려나가면 어떨까. 다행히 서울시 노원구의 에너지 제로 아파트가 이번 여름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고 하니 비슷한 모델을 더 확장하면 되겠다.

살인적인 더위가 찾아온 여름, 잡초의 뜻밖의 쿨링 효과로 열대야 없이 지내서 다행이다. 누군가 가장 친환경적이고, 우아한 에어컨은 바로 식물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온 지천이 논이고, 숲인 시골집도 내년에는 에어컨을 놓아야 할 것 같다. 가장 친환경적이고, 우아한 에어컨조차 너무 더워진 기후와 뜨거운 태양에 타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서혜림 청년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 운영
#귀촌#여름#에어컨#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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