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아들을 학원에 보내는 문제로 고민하던 후배가 프랑스 학생들도 학원에 다니냐고 물었다. 프랑스에도 학원이 있기는 하지만, 개념과 목적이 크게 달라서 간단하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우리 초중고교생이 다니는 ‘학원’을 프랑스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 대신 집에서 보충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학생과 개인 과외 선생을 연결해주거나 소그룹 과외 지도를 알선하는 ‘회사’가 있다.
그중에서 제일 크고 오래된 ‘아카도미아(Acadomia)’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가사 도우미처럼 ‘교육 도우미’를 가정에 제공해주는 서비스 회사로, 학습 부진아를 위해 1989년에 설립됐다. 학교에서는 물론 구청에서도 무료 보충수업을 지원해주지만, 그것으로도 불충분해서 학교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학생들이 집에서 학교에 잘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회사의 설립 취지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런 기관을 통한 과외 수업료의 50%에 대해 학부모가 세금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사교육을 장려라도 하는 것 같아 처음에는 의아했다. 하지만 실제로 프랑스에 산 10년 동안, 중고등학교 제자들이나 주변에서 이런 학원 이용해 봤다는 학생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전에는 프랑스식 학원 광고가 대부분 학습 부진아들을 위한 것이었던 데 비해, 최근에는 우수 학생들을 위한 심화, 선행 학습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적이 안 오르면 100% 환불”이라는 광고도 등장했다. 부진아에서 우수 학생으로 학원 이용 대상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프랑스 공교육이 오랫동안 교육 기회의 평등에 집중하다 보니, 학생들의 실력이 하향 평준화되고, 역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자신에게 알맞은 교육을 충분히 못 받게 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원래 취지대로 낙오자를 위한 것이든, 최근 경향처럼 엘리트 교육을 위한 것이든 프랑스의 학원은 철저하게 학교가 다 충족시켜 줄 수 없는 ‘빈틈’을 보완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학원은 학교를 위해서만 존재하고 기능할 뿐, 학생의 필요와 능력에 따른 보충 교육 이상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 이는 공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공교육의 목표는 교육의 균등한 기회 부여라는 프랑스의 교육 철학이 확고하게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파리의 한 사립 중학교에서 열린 교육 특강에 갔을 때의 일이다. 강사로 초빙된 교수는 프랑스 교육의 하향 평준화를 비판하면서 한국을 예로 들었다. 지표상으로 한국 중고생들의 학력 수준은 꽤 높았고, 특히 수학은 선두권이었다. 교수는 높은 교육열과 한국 학생들의 우수성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한국의 학원을 언급하며 “프랑스는 한국의 엘리트 교육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한국 사람은 나뿐이라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는데 으쓱하기보다는 씁쓸했다.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학원이 전보다 더 심하게 ‘발전’한 것 같다. 우리를 칭찬하고 부러워하던 프랑스의 동료 교사들과 제자들에게 학원이 아니라 학교를 자랑하고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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