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25년과 벌금 200억 원을 선고받았다. 1심보다 징역 1년, 벌금 20억 원이 늘었다. 삼성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 원이 뇌물로 추가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 1심과 항소심, 이재용 삼성 부회장 1심과 항소심 선고가 이뤄졌다. 하지만 4번의 재판에서 삼성 뇌물 관련 판결 내용이 유독 서로 달라 어느 판단을 따라야 할지 헷갈릴 정도다.
영재센터 후원금은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만이 아니라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도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지원해 달라는 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봤다. 하지만 묵시적 청탁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영재센터 후원금보다 10배 이상 큰 미르·K스포츠센터 출연금 204억 원은 뇌물로 보지 않았다. 앞의 두 재판부는 영재센터 후원금을 뇌물로 보면 미르·K스포츠센터 출연금도 뇌물로 봐야 하는 부담 때문에 영재센터 후원금도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둘 다 뇌물로 보든가, 아니면 둘 다 뇌물로 보지 않는 것이 논리적이다.
검찰은 삼성의 미르·K스포츠센터 출연금을 뇌물이라고 주장해왔으나 이것만은 어느 재판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기업은 늘 현안이 있기 마련이고 함부로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면 출연금을 낸 모든 대기업이 뇌물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이 출연금 204억 원 이외에 낸 영재센터 후원금 16억 원도 강요죄만으로 볼 소지가 있고 실제 그렇게 본 재판부가 두 군데나 있었다. 이번 재판부가 그 부분만 떼어내 묵시적 청탁을 적용해 제3자 뇌물죄까지 인정한 것은 균형감이 없어 보인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묵시적 청탁에 따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하는 과정에서 개입한 것으로 봤다. 이런 판단은 미국계 헤지펀드로 옛 삼성물산 주주인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엘리엇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삼성의 정유라 씨 승마 지원은 부정 청탁이 필요 없는 단순 뇌물죄가 적용됐다. 그렇다면 부정 청탁과 연루된 것은 영재센터 후원금 16억 원뿐이고,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엘리엇에 패소해 수천억 원을 배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묵시적 청탁은 박 전 대통령 1심에서 인정되지 않았다가 항소심에서 인정됐고, 이 부회장 1심에서는 인정됐다가 항소심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 정 씨 승마 지원도 박 전 대통령 1심은 실제 지원한 금액만 뇌물로 보고 약속한 건 뇌물로 보지 않았으나 항소심은 모두 뇌물로 봤다. 재판부마다 판단이 극심하게 엇갈린다.
대법원이 최고법원다운 신중함을 갖고 하급심의 혼란을 정리해야 한다. 판단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할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하는 법언(法諺)을 따를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도 재판을 거부한 항소심과는 달리 상고심에서만큼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으면 한다. 그래야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역사적 판결도 더욱 신뢰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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