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길진균]박원순의 ‘아니면 말고’ 개발 계획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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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스스로를 ‘소셜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아이디어를 무기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의 많은 아이디어는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의 설립과 활동으로 이어졌다. 시장이 된 이후에도 그는 틈틈이 수첩에 쓴 아이디어를 회의 때 거론하며 정책화를 주문했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같은 정책도 이런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박 시장의 스타일은 서울시 공무원들에게는 부담이었다. 재래시장을 둘러본 뒤엔 태양광 설치, 전선 지중화, 야시장 운영 등을 주문했다. 박 시장의 말 한마디로 관련 부서는 초주검이 됐다고 한다. 시 공무원들은 수첩을 펴고 깨알 지시를 하는 박 시장을 ‘박 주사’ ‘박 계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 박 시장도 유난히 대규모 건설계획에 대해서만은 부정적이었다. 이명박 오세훈 전 시장의 청계천 사업과 ‘한강 르네상스’ 등에 대한 반작용이었는지, 자신의 브랜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장’을 내세웠다. 대규모 개발 계획을 추진하는 사람을 ‘토건족’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3선을 전후해서 변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더 이상 ‘수첩’은 없다”며 깨알 행정의 변화를 다짐하더니 웬걸, 여의도·용산 통합 개발 계획과 경전철 4개 노선 신설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들고나왔다. 갑자기 안 하던 ‘토건족’ 행보를 보이니, 정가에서 2022년을 겨냥한 대선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 것도 당연하다.

▷박 시장은 여의도·용산 개발 계획을 내놓은 지 7주 만인 26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계획을 전면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아니면 말고’식 행보지만, 그 사이 서울 부동산 시장은 춤을 췄다. 아이디어를 즉흥적으로 정책화하려는 박 시장의 스타일은 시민운동가 때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1000만 메가시티 서울의 수장으로선 부적합하다. 서울역∼용산역 철도 지하화와 2조8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경전철 건설 등은 중앙정부와의 사전 협의와 조율 없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 시장의 즉흥 행정이 낳은 대형 사고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박원순 서울시장#소셜 디자이너#용산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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