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불씨 남은 헌재-대법 간 재판 갈등 입법적 보완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1일 00시 00분


헌법재판소는 어제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금지한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긴급조치 피해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이 낸 헌법소원 54건을 기각하고 국가배상재판 취소 청구는 각하했다.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하면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이지만 나머지는 대상이 안 된다’는 2016년 4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확인한 것이다.

헌재는 2013년 3월 긴급조치 발령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번 결정에선 긴급조치는 위헌이지만 대법원이 위헌 법령을 적용한 것이 아니므로 국가배상책임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에 대한 소원의 허용을 촉구해 온 헌재가 예외적인 허용 기준만 재확인하고 자제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두 기관 간 충돌의 불씨는 남아 있다. 기각된 54건 외에 헌재가 위헌 결정한 법령을 적용한 재판소원 사건이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정위헌 결정의 효력을 놓고 두 기관은 충돌을 거듭했다. 한정위헌이란 ‘∼하는 한 위헌’이라는 식의 변형 결정이다. 대법원은 어떤 법률 규정에 대해 한정위헌이 내려져도 구속받지 않고 그 법률을 적용해 재판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심 청구로 이어져 결국 4심제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헌재의 결정을 대법원이 인정하지 않으면 집행할 강제력이 없다.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두 기관 간 대립을 막을 입법적 보완이 절실하다.

오늘로 창설 30년을 맞은 헌재는 여야 정치권이 타협한 산물이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이 법관추천회의를 포기하는 대신 신설하는 헌재에 헌법소원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당시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서 재판을 제외하는 이유에 대해선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 30년간 지속됐던 사법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되고 두 기관의 위상 변화 등에 발맞춰 국민적 합의를 다시 구할 필요가 있다.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헌재 파견판사를 통해 재판관 평의 내용 등 정보를 빼돌리려 했던 것도 두 기관이 빚은 권한다툼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재판소원 문제는 두 기관만이 아니라 국민권익 보장과도 밀접한 사안이다. 헌법 개정 과정에서 두 헌법기관의 권한과 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 방향은 기관 간 밥그릇 다툼 차원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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