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당신 딸의 들러리가 아니다.’ 30일 서울 강남 A고교 정문에 성난 엄마들이 벽보를 붙였다. 이 학교 교무부장이 나란히 문·이과 1등을 차지한 쌍둥이 딸이 볼 시험지와 정답을 사전 검토했다는 감사 결과가 발표되자 집결한 것이다. 엄마들은 혹시 딸의 수업에 방해될까 구호를 외치는 대신 침묵을 지켰다. 경찰 수사로 밝혀질 테지만 시험지와 정답 유출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 교육은 사망 선고를 앞두고 있다.
▷시험지 유출이 사실로 드러나면 공교육의 근간이 흔들린다. A고교는 한 해 수십 명씩을 이른바 SKY대에 보낸다. 이런 명문고에서 교사가 직접 반칙을 했으니 그동안 시험지 유출 사건과는 파장이 다를 것이다. 가뜩이나 학교의 실력을 믿지 못해 학원을 찾는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육의 ‘마지막 보루’인 교사의 직업윤리마저 무너진다면 학교도 함께 붕괴할 것이다. 경찰 입회 아래 시험 출제와 배포가 이뤄지고, 교실마다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고교 내신을 반영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현행 대입제도도 위태로워진다.
▷교사의 배신도 뒷맛이 쓰다. 교사인 아빠가 “딸들을 고교 입학 후 수학학원을 보냈더니 성적이 올랐다”고 해명했다. 해당 학원에서 딸들이 속한 ‘레벨’로는 전교 1등이 어렵다고 엄마들이 반박했고 ‘쉬쉬’하던 사건은 더 커졌다. 지난달 대입 공론화 과정에서 교사 단체들은 학종을 축소하고 수능 위주 전형인 정시를 확대하는 방안에 반대했다. 고교 교육을 살려야 한다는 취지였다. 벌써 학부모들은 “학종이 교사 자녀들에게 유리한 전형이라 그런 것 아니냐”며 진의를 의심하고 있다.
▷만에 하나 사실이 아니더라도 해당 쌍둥이 자매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쉽지 않을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내신 경쟁에 교육 현장에 불화와 의심이 피어오르고 있다. 서울 강남 고교에선 필기한 공책이나 수행평가 보고서가 종종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 교육의 참담한 모습이다. 미리 가르친 학부모가 문제인지, 안 가르친 교사가 문제인지, 정치로 왜곡된 교육행정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모두가 A고 사태의 ‘공범’은 아닌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