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성공방식 집착하는 오만… 권력자도 집권 방식대로 통치
‘박정희 신화’ 업은 朴 권위주의… MB 과도한 ‘비즈니스’ 실패로
진보주의 일관 삶으로 집권한 文… ‘문재인 2.0’ 진화해야 성공할 것
조선 성종 말년에 다리가 셋 달린 닭이 태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신하들은 왕이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괴변이 벌어졌다고 다그쳤다. 심지어 왕이 베갯밑송사에 넘어갔을 때 이런 변고가 벌어진다는 해석까지 내놨다. “내가 여자 말을 들어준 적이 없다”고 변명까지 하던 성종은 급기야 분노를 꾹 참고 “모든 재이(災異·괴이한 재앙)는 내가 불러일으켰다”고 내뱉고 만다.
서양에서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즈음에 이따위 논쟁이나 벌인 조선의 조정이 기막히다. 그럼에도 성종이 ‘인내의 화신’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성종은 작은아버지 예종이 서거하자 갑자기 왕이 된 경우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7년간 할머니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다. 섭정이 끝난 뒤에도 세조 반정의 공신 집단에 휘둘렸다. 인내의 연원(淵源)이 어딘지 짐작하게 하지만, 그 인내심을 바탕으로 정치를 펼쳐 조선 전기의 명군(名君)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일곱 살에 세자로 책봉된 큰아들은 달랐다. 신하들에 대한 아버지의 극도의 인내를 가까이서 지켜본 세자는 18세의 젊은 나이에 즉위하자마자 정반대로 나갔다. 제왕의 권위에 대한 일체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무오·갑자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공신과 관료들을 살해하는 공포정치를 펼쳤다. 바로 연산군이다. 드라마에선 생모의 폐위와 죽음을 접한 젊은 국왕이 광인(狂人)으로 돌변하는 것으로 설정하지만, 어디까지나 드라마일 뿐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국왕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집권 경위와 기반에 좌우됐다. 연산의 학정(虐政)에 대한 반정으로 18세에 갑자기 왕이 된 중종도 집권 전반기 반정 공신들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어디 조선의 국왕들뿐일까. 모든 권력자는 자신이 집권한 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세습 왕조가 끝난 뒤에도 권력의 공식은 적용된다. 권력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쟁취한 권력자는 자신이 집권에 성공한 방식을 성공의 제1의 법칙으로 확신하고, 무오류의 신화에 빠진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이걸 휴브리스(Hubris)라고 불렀다. 휴브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의 영역에까지 침범하는 권력자의 오만을 뜻하지만,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 방식에 집착하다 결국은 패망한다는 함의(含意)가 있다. 오늘날에도 조직의 오너나 CEO(최고경영자), 1위 기업이 실패하는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지금 영어(囹圄)의 몸인 두 권력자도 휴브리스 때문에 실패했다고 나는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의 신화에다 비운의 공주라는 신비주의 이미지에 크게 힘입어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집권 후에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 시대의 권위주의 통치 스타일을 고수했고, 대통령이 돼서도 국민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신비주의를 유지했다. 그 신비주의의 커튼을 쳐주는 사람이 최순실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비즈니스 능력 때문에 성공했고, 부자가 됐으며, 대통령까지 됐다. 이념 과잉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질릴 대로 질린 국민에게 MB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실용의 리더십으로 비쳤다. 문제는 그가 대통령이 돼서도 과도하게 비즈니스에 집착했고 와중에 ‘패밀리 비즈니스’까지 챙겼다는 점이다. 그는 성공한 기업가였고, 훌륭한 가장이었을지 몰라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자신의 성공 방식을 깼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생을 진보주의자로 살았다. 그의 일관된 삶이 제 몫만 챙기고 민생은 도외시한 보수 정권에 질린 국민에게 신뢰를 주었고, 그것이 집권의 가장 큰 기반이 됐다. 그러나 대통령이 돼서도 진보의 틀 안에만 갇혀 일관성을 고집한다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아직도 외교안보와 경제 정책에서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린 그림을 기필코 완성하려는 그의 집요한 뚝심에서 휴브리스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성공 방식에서 진화하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전임자가 두 명이나 있지 않은가.
벌써 집권 1년 4개월. 개각과 함께 문재인 정부 2기가 시작됐다. 역대 대통령의 레임덕이 점점 빨라지는 추세를 보면 강한 리더십을 갖고 제대로 일할 시간은 1년 반 남짓일 것이다. 그만큼 대통령이 ‘문재인 2.0’으로 진화할 시간도 그렇게 많이 남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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