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없는 테슬라를 상상하기 어렵다지만 지난달만큼은 예외였다. 투자자들은 “그의 헛소리가 투자자를 망하게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발 머스크가 ‘가만히 있기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바랐던 한 달이 아니었을까.
‘테슬라를 주당 420달러(약 47만 원)에 비상장사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자금은 확보됐다.’
머스크가 이 같은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 것은 지난달 7일, 그 뒤 미국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정보기술(IT) 업계의 밥상머리 화제는 테슬라와 머스크가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비상장사 전환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기 전부터 다른 논란거리가 생겼다. 바로 돈이다. 미국 투자은행들이 예상하는 테슬라의 비공개 회사 전환에 필요한 비용은 무려 700억 달러(약 79조 원).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이 거액을 지불할 것이냐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머스크는 직접 후원자를 공개했다. 그는 “필요한 자금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PIF(Public Investment Fund)’가 낼 것”이라며 “이미 수개월간 PIF와 논의한 내용이고, 그들도 ‘강력한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큰소리치던 머스크가 궁색해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의지가 크다던 PIF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침묵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 직후 투자 업계의 ‘검증의 화살’은 테슬라가 아닌 PIF로 향하기 시작했다. ‘PIF가 그만한 돈이 있어?’란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PIF는 이미 투자한 기업이 많아 돈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소프트뱅크 IT 투자 펀드인 비자펀드에 450억 달러, 미국 사모펀드 회사 블랙스톤과의 펀드 조성에 200억 달러를 썼고, 모바일 차량예약 서비스 기업 우버에도 35억 달러를 투자했다. 테슬라 지분도 3∼5% 갖고 있다. 이미 많은 돈을 썼으니 돈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전 세계 언론사들의 분석은 예외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비슷비슷했다.
관심은 PIF가 쓴 돈뿐 아니라 ‘벌어올 돈’, 즉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 진행 상황까지 이어졌다. 사우디 정부는 올해 하반기(7∼12월) 아람코의 IPO를 통해 지분 5%를 매각해 PIF에 최대 1000억 달러를 추가 조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런데 “아람코 가치 평가 작업이 늦어진 지 오래고, 발표만 안 했을 뿐 이미 물 건너간 사안”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PIF 입장에서 보면 가만히 있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다.
사우디의 국부펀드 PIF를 이끄는 인물은 사우디의 실세로 꼽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머지않은 미래에 석유 파는 일이 아닌 다른 사업을 해보려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전 세계 미디어가 ‘PIF 가계부’를 뜯어보면서 돈이 떨어져 간다고 이야기하니 사우디 입장에선 자존심깨나 상했을 것이다. 비공개 회사 전환에 대한 얼마나 깊은 공감대가 있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머스크가 PIF까지 들먹인 것은 분명히 악수(惡手)였다.
지난달 20일 로이터 등은 복수의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이런 보도를 했다. “PIF가 테슬라가 아닌, 그의 경쟁사 루시드 모터스에 약 10억 달러 규모를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보도는 결국 테슬라에 돈 쓸 마음이 없다는 PIF의 간접적인 대답이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나흘 뒤인 24일 결국 머스크는 비상장 회사 추진 계획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누구 하나 이익을 보지 못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머스크에 대한 신뢰도는 말할 것도 없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테슬라의 문을 두드렸던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이 요즘 다시 애플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7월 머스크는 태국 유소년 축구팀이 동굴에 고립됐을 당시 자신이 제안한 ‘소형 잠수함’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한 잠수부를 ‘소아성애자’라고 불렀다. 8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 도중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해 조울증 논란에도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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