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이라던 올 7월 러시아로 한 주간 답사여행을 떠났습니다. 전공이 사학이라 대학 시절 지방으로 가끔 답사를 떠났는데 과(科) 동창 20명이 30여 년 만에 다시 모였으니 추억여행이 됐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주요 행선지였는데 막바지에 유람선으로 네바 강가를 도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문득, 다리에서 유난히 크게 손을 흔드는 20대 청년이 눈에 보였습니다. 짧은 금발에 안경을 낀 해맑은 모습이었죠. 그런데 그 청년은 배가 다리 서너 개를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지인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일행의 눈을 끌게 된 그 청년을 살펴보니, 손 인사를 마치자마자 다음 다리까지 냅다 뛰고 있었습니다. 당시 현지 기온이 서울보다는 10도 정도 낮았지만 위도가 높은 곳이라 그늘이 없는 야외의 햇볕은 몹시 따가웠습니다. 이후 7, 8개의 다리에서 땀에 흠뻑 젖은 그를 계속 마주치자 걱정하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어머, 쟤 또 왔어.”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저러냐?” “누구 집 자식인지, 부모가 알면 얼마나 속상할까?”
국적과 피부, 언어가 달라도 엄마마음 아빠마음은 다를 게 없습니다. 일행은 어느 순간 장애가 있는 젊은이의 도전을 다룬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을 떠올린 겁니다. 유람선이 좁은 지류에서 폭이 넓은 강 중심으로 향하자 청년의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배가 다리가 많은 지류 쪽으로 돌아갈 무렵 그 친구가 또 보일까 하는 게 일행의 관심사가 돼 버렸습니다. 마침내 그의 모습이 나타나자 일행과 청년은 반갑게 서로 손을 흔들었습니다. ‘도대체 저 친구가 왜 그럴까’라는 궁금증을 안고서요.
선착장에 도착할 무렵 한국인 가이드가 “저 친구 ‘알바’예요. 아마 저보다 하루 수입이 많을걸요”라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엄마 아빠들은 5유로(6500원), 500루블(8200원)짜리 지폐를 주저 없이 건넸습니다. 땀에 젖은 채 연신 안경을 닦는 청년에게 애썼다며 등도 두드리고 같이 기념사진도 찰칵 찍었습니다.
누가 저런 아이디어를 처음 냈을까요? 세상사를 돈과 숫자로 환산할 필요는 없음에도 일행들 사이에서 다리 뛰기 알바는 ‘무자본 아이디어 벤처’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의 알바에는 분명 아이디어와 땀으로 자식 둔 부모 마음을 파고드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깔려 있었습니다. 부모 관객들이 1시간여 동안 걱정과 궁금증을 갖고 심지어 ‘투 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에 촉각을 세웠으니까요. 곧 귀국 비행기에 오르는 이방인들에게 펼쳐진 그림 같은 강가와 다리, 낯선 청년의 등장은 절묘한 타이밍의 드라마였습니다.
모스크바에서 관람한 서커스에서도 스토리텔링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거 추석 무렵 TV에 나오던 몬테카를로 쇼 같은 세련된 분위기였죠. 아찔한 공중곡예와 10마리까지 등장하는 호랑이 쇼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것은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피에로였습니다. 그의 역할은 공연장 분위기를 띄워주고, 다음 코너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버는 역할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번 10분 안팎의 짧은 시간에 관객을 불러내 순간적으로 러브 스토리와 삼각관계, 슬랩스틱 코미디를 만드는 배우이자 연출자였습니다. 관객들은 대사 없이 표정과 몸짓만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그의 무대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시쳇말로 배꼽 잡으며 박수를 쳤습니다.
최근 김용화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이 1200만 관객의 고지를 넘었습니다. 지난해 개봉한 첫 편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관객 1000만 명을 넘어 이른바 시리즈로서는 첫 ‘쌍 1000만 영화’가 됐습니다. 이 시리즈는 대만과 홍콩은 물론 동남아 개봉에서도 한국 영화의 흥행 기록을 경신하면서 할리우드의 마블처럼 시리즈 영화의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3년 고릴라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미스터 고’의 흥행 참패(132만 명) 이후 만들어낸 흥행 반전입니다.
지옥세계를 수준급으로 그려낸 비주얼의 공도 있지만 권선징악과 가족애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흥행 코드였습니다. 부모 살해와 군부대 의문사, 빈민문제 등 무거운 소재도 있지만, 그 차이보다 더 뜨거운 가족의 용광로를 만들어낸 게 김 감독의 ‘신(神)의 한 수’였습니다.
알바였든 뭐든, 저로서는 뜻밖의 스토리를 남겨준 그 청년을 잊을 수 없습니다. 혹 10년 뒤 다시 찾아도 뛰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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