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WP)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답답했다. 11일(현지 시간) 출간 예정인 화제의 신간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백악관 전·현직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정작 가장 원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인터뷰가 끝내 성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과 라지 샤 백악관 부대변인 등을 포함해 6, 7명에게 의사를 타진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우드워드가 백악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공포’의 원고가 이미 완성된 후인 지난달 중순이었다. 최근 공개된 이 통화 녹음 파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도 인터뷰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내게 (제의가 왔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우드워드는 어찌 된 영문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통령님과 연락이 닿으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우드워드)
“글쎄요. 만약 매들린에게 전화를 걸었다면…. 매들린과 얘기해 봤나요? 매들린이 ‘키(key)’이자 ‘비밀(열쇠)’인데.”(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의 ‘문고리’를 쥐고 있다고 언급한 사람의 이름은 매우 생소했다. 매들린 웨스터하우트. 올해 28세로 2013년 찰스턴대를 졸업한 뒤 약 4년간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의 인턴 및 보좌관 생활을 거쳤다. 2년 전 대선 당시엔 케이티 월시 공화당전국위원회(RNC) 비서실장의 보좌관으로 일했으며, 월시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백악관 부비서실장으로 들어오면서 같이 백악관에 입성했다. 현 직책은 백악관 특별보좌관이다.
2년 전엔 트럼프 대통령의 인수위원회가 차려졌던 트럼프타워 로비에서 귀빈(VIP)들을 맞이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당시 ‘트럼프타워 걸’로 유명해졌다. 헬스트레이너로 부업을 뛰기도 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백악관에서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을 정도의 깜냥이 되는 인물이란 인상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웨스터하우트에 대한 신뢰는 확고하다. ‘어떻게 백악관 부대변인(라지 샤)을 통해서도 연락이 닿지 않느냐’고 우드워드가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라지와는 대화를 안 한다”고 답했다. 특별한 경력이 없는 28세 보좌관을 백악관 부대변인보다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 발언엔 그만의 독특한 인사 철학이 담겨 있다. ‘검증된 능력이 없어도 충성심만 보인다면 최고 수준의 권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효과적인 전략이다. 신간 ‘공포’에 따르면 그의 주요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거지가 국가에 위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이를 통제하려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움직임을 배신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일천한 경력의 충성심 강한 측근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의 딸과 사위가 백악관 선임보좌관 자리를 여전히 꿰차고 있고, 이방카의 측근인 30세의 호프 힉스가 한때 백악관 공보국장을 지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만약 이들 참모가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를 의도적으로 무능화시키려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그림자 정부)’라면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심지어 현명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행정부의 성공을 위해 충언을 하려는 것이라면 웨스터하우트와 같은 인물들의 출세는 그 자체로 백악관 내 건강한 소통이 단절됐다는 적신호나 다름없다.
올 1월 발간된 ‘화염과 분노’부터 이번 ‘공포’까지. 백악관 내부 사정을 폭로하는 책의 발간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웨스터하우트에 대한 신뢰는 깊어졌다. 지난해 9만5000달러이던 그녀의 연봉은 올해 36%나 올라 13만 달러(약 1억5000만 원)가 됐다. 백악관 법무팀 변호사의 봉급과 맞먹는 수준이다.
골수 지지자들은 똑똑한 참모 100명보다 ‘충성심’ 하나로 인정받는 웨스터하우트가 낫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선거의 캐스팅보트(결정권)를 쥐고 있는 ‘비판적 지지’에 능한 핵심 중도층도 이에 동의할까. 이들은 ‘화염과 분노’ 그리고 ‘공포’와 같은 폭로성 책들이 트럼프 백악관을 환골탈태시키는 데 기여하는 경종이 되길 역설적으로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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